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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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록' 발췌본, 원문과 비교해보니

“NLL 부정 분명” “설득 과정 오버” 전문가들 해석 엇갈려
국가정보원이 24일 공개한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전문과 국회 정보위 소속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20일 열람한 발췌록을 비교하면 차이점이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나눈 대화의 전후맥락과 경위 등을 제대로 알기 어려운 발췌록은 왜곡·과장 논란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NLL 포기 발언 있었나

발췌록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노 전 대통령의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이 있었는지 여부다. 새누리당은 NLL 포기 발언의 근거로 “NLL은 다 바꿔야 한다”는 노 전 대통령의 언급과 “쌍방이 다 법을 포기한다”는 김 위원장의 제안에 노 전 대통령이 “네, 좋습니다”라고 답한 부분을 들고 있다. 발췌록만 봤을 때는 NLL을 포기하는 것처럼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전문을 살펴보면,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바꿔야 한다”는 표현은 서해협력 평화지대라는 노 전 대통령의 구상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어로협력을 공동으로 하고, 한강하구도 공동개발하자는 제안이 뒤따라 나오고 있다. “네 좋습니다”고 대답한 부분도 마찬가지다. 이 같은 대답은 노 전 대통령이 개성공단과는 별도의 해주 공업지대 구상을 설명하면서 인천에서 개성과 해주를 잇는 고속도로 건설을 제안하기 위해 분위기를 잡으려고 던진 발언으로 여겨진다.

NLL 포기 여부에 대해서는 전문가 사이에서도 해석이 엇갈린다. 김용호 인하대 교수는 25일 “(노 전 대통령이) 포기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인식을 같이한다고 한 것은 NLL을 인정 안 한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신율 명지대 교수는 “김 위원장이 주장하는 공동어로구역을 서해평화협력지대로 하려고 설득하는 과정에서 좀 오버한 것은 있지만 포기는 아니다”고 말했다.

◆서상기, “보고하는 수준이었다”…김계관의 북핵·6자회담 보고인 듯

새누리당 서상기 정보위원장이 “대화가 아니고 보고하는 수준이었다고 보면 된다”고 주장한 것은 향후 왜곡 시비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보인다. 노 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6자회담에 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는데 조금 전에 보고를 그렇게 상세하게 보고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는데, 발췌록에는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두고 이런 발언을 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전문을 보면 당시 상황이 자세히 나와 있다. 2007년 10월3일 오후 남북정상 2차 회담은 중국에서 개최된 6자회담 10·3합의문이 발표된 직후에 열렸다. 6자회담 10·3합의는 당시 한국 측 천영우 6자회담 수석 대표가 참석했는데, 2005년 6자회담에서 합의한 9·19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2단계 조치에 대한 합의사항을 담고 있다.

전문에서는 김 위원장이 6자 회담 보고를 전날 밤에 받았다고 설명하자,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김계관 당시 외무성 부상의 보고를 들어보자며 노 전 대통령에게 제안을 했다. 이에 김 부상이 회담장에 들어와 6자회담 10·3합의 과정과 내용을 설명했다.

◆“억지를 부려본 적 있다”→“이렇게 한 적이 있다” 과장된 단어 사용도

전문 69쪽과 70쪽을 보면, 노 전 대통령은 남북 장관급 회담이 무산된 상황을 설명하면서 “서해평화 문제 얘기가 진전이 안 되면 장관급 회담을 안 할란다. 이렇게 한 적도 있습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발췌록에는 이 부분이 “이렇게 억지를 부려본 적도 있다”는 것으로 적시돼 있다. 국정원이 검찰에 제출하기 위해 발췌록을 만들면서 당시 상황을 도드라지게 보이려고 일부 과장된 단어를 사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전문과 발췌록 동일한 내용도 있어

2005년 북한에 대한 미국의 방코델타아시아(BDA) 제재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이 “미국의 실책”이라고 말하고 여론조사 결과 ‘제일 미운 나라’를 묻는 질문에 미국이 1위를 차지했다고 답했다는 내용은 같다. 노 전 대통령이 해외 정상들과의 대화 중 북측의 대변인 역할을 했다는 내용과 미국에 대해 “패권적 야망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고 말한 부분도 발췌록에서 확인된다.

이우승·유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