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팽목항에 모여든 가족들의 미간이 일순간 일그러졌다. 일주일 동안의 기다림에 지쳐 초췌한 얼굴로 사망자 명단 앞에 섰던 한 아버지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내 딸이야. 내 딸. 드디어 찾았어.”
‘신원미상’이라고 적힌 종이에서 딸의 흔적을 찾은 그는 마치 살아 돌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울음 섞인 고함을 질렀다.
이를 보던 한 어머니는 “옆 집은 찾았대. 잘됐어. 우리 딸은 언제나 나오는 거야”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곧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 거야”라며 울먹거렸다. 급하게 달려왔는지 맨발로 슬리퍼를 신은 다른 어머니도 “우리 애는 또 없어”라며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메마른 울음소리가 곳곳에서 새어 나왔다.
22일 세월호에서 인양한 시신을 가장 먼저 실어나르는 배가 도착하는 팽목항에서는 실종자를 찾은 가족의 슬픔과 아무것도 못 찾은 가족의 한숨이 뒤섞였다. 저세상으로 떠난 자식을 보고 울부짖는 부모의 울음은 부두를 비현실적인 광경으로 만들었다.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한 지 7일째를 맞은 22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119구조대원들이 사망자의 시신을 옮기고 있다. 시신이 인양될 때마다 실종자 가족들의 실낱 같은 희망은 사그라지고, 통곡 소리만 항구를 휘감고 있다. 진도=이재문 기자 |
시신을 확인하기 위한 작업이 온종일 진행됐던 안치소에서는 가족들의 통곡이 끊이지 않았다.
“악!” 외마디 비명을 내지른 한 어머니는 “내 딸아. 몸이 너무 차잖아. 엄마가 왔어. 일어나 봐”라며 목 놓아 울었다. 시신을 확인하고 나오던 단원고 2학년 3반 학생의 어머니는 “내 아이의 시계가 10시20분에 멈춰 있다. 사고 당시 물이 바로 들어왔나 봐”라며 울음을 터뜨렸다. 남편은 “아이들의 시신이 너무 깨끗하다. 마치 자는 것 같다. 손도 발도 전혀 붓지 않고 그대로”라며 “명백하게 질식사다. 산소만 투입했어도 살았을 수 있었을 텐데” 하고 아내를 부축했다.
이날도 실종자를 만나지 못한 가족들은 현행 확인 절차를 개선해 줄 것을 요구했다. 시신의 신상발표를 지켜보던 한 여성은 “체형과 머리길이, 옷, 소지품만으로는 구별하기 어렵다”며 “저러면 다 내 애 같잖아”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가족들은 “귀는 안 보나? 내 딸은 귀에 작은 사마귀가 있는데…” “아들 발에 습진이 있는데 양말은 안 벗겨 봅니까”라며 더욱 상세한 신체정보 제공을 원했다. 하지만 경찰 관계자는 “밀폐된 공간이 없어 아이들 옷이나 양말은 벗기지 않고 발견 당시 그대로 데려오고 있다”며 “보다 자세한 신체적 특징은 병원으로 옮겨 의사가 파악한다”고 설명했다.
진도=이재호, 이보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