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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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족들 ‘여야 재합의안’ 거부 왜

여야 재합의안 거부한 유족들
‘수사권 요구’ 더 강경카드 선택
파행 정국이 길어지면서 정치권의 부담이 날로 가중되고 있으나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결국 ‘비타협 노선’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세월호 가족대책위는 20일 저녁 경기 안산 정부 공식 합동분향소에서 유족 230여명, 176 가족이 참여한 가운데 총회를 열고 3시간 이상 걸친 논의 끝에 전날 가까스로 마련된 여야의 세월호 특별법 2차 협상안까지 거부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유가족의 강경 모드는 국회 국정조사 특위 기관보고, 청문회 증인 채택 등 그동안의 수습 국면에서 생긴 새누리당에 대한 불신이 가장 큰 이유로 풀이된다.

설득 ‘진땀’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오른쪽)가 20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단식 농성을 하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 김영오씨(왼쪽)를 찾아가 세월호 특별법 재합의안을 수용해달라고 설득하고 있다. 전날부터 단식 농성을 함께 하고 있는 같은 당 문재인 의원이 옆에서 듣고 있다.
김범준 기자
세월호 진상조사위에 수사·기소권을 부여하는 특별법을 요구한다는 이날 가족총회의 최종 선택안은 전날 대책위가 “국회 추천 4명 중 2명의 추천권이 여전히 여당이기 때문에 반대한다”며 “(야당이 추천위 4인의 추천권을 모두 갖도록) 재협상을 요구한다”는 성명을 발표한 것보다 오히려 입장이 강경해진 것이다. 투표에서 이 안은 132 가족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30 가족은 상대적으로 절충적인 안을 택했고 14 가족은 기권했다.

추천위 여당 몫 2명을 유가족과 야당 동의 하에 추천하는 여야의 2차 합의안은 논의 테이블에 오르지도 못했다. 가족대책위 유경근 대변인은 표결 후 브리핑에서 “(가족총회는) 어제 발표된 여야 특별법 재합의 사항에 대해 받아들일거냐, 말거냐를 의논하는 자리는 아니다. 2차 합의안 거부 의사를 어제 표명했고 변동여지는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수사권과 기소권 부여의 목표가 진상조사 규명인 만큼 여야가 사고 진상을 제대로 밝힐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우리를 먼저 설득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또 ‘여야 재합의를 거부하며 대통령과 국회에 호소합니다’라는 호소문을 통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답해야 할 사람은 우리가 아니라 대통령”이라고 주장했다. 유족들은 대통령와의 만남 등을 요구하며 호소문을 마무리했다.

총회에 모인 가족들은 ‘외부 사람들’에 대해 시종 격앙된 표정이었다. 야당 의원은 물론 취재진도 아예 미술관 건물 내부 입장을 저지당했다. 안산 지역구 의원을 포함한 일부만 건물에 남아 있었지만 회의장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2차 합의안마저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유가족의 강경한 입장에 대해 “너무한 것 아니냐”는 비판 여론이 일고 있다. 그러나 유가족 나름의 반대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다. 유 대변인은 이날 오전 라디오방송에서 “저희 쪽과 충분한 대화나 서로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한 노력이 없었기 때문에 (2차 합의안을) 100%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미 (세월호) 국정조사를 통해 그런 학습을 너무 많이 했다”며 “그런 것을 해소할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소수 정당과 시민사회의 강경한 태도가 더 상황을 악화시킨다는 분석도 있다. 새누리당 이장우 원내대변인은 이날 라디오방송에서 “(외부) 시민사회단체가 결합되면서 합의안을 추인하는데 앞으로도 상당히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의당 천호선 대표와 소속 의원 5명 전원은 이날 “성역 없는 진상 조사라는 취지를 살리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며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끝까지 유가족과 함께하겠다”는 것이지만 존재감 부각 의도도 엿보인다.

홍주형 기자, 안산=박영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