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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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 실패 새정치연합…추인 vs 재협상 중대 기로

안산총회서 박대 당해
새정치민주연합은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마련한 세월호 특별법 2차 합의안이 유가족들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히면서 공황 상태에 빠졌다. 유가족이 20일 총회에서 2차 합의안을 거부키로 최종 결정한데다 새누리당도 ‘재재협상’ 요구를 일축해 새정치연합은 ‘고립무원’ 처지에 놓였다. 제1야당이 세월호법 협상에서 존재감을 상실하면서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빠진 셈이다.

총회 마친 유족들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이 20일 밤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의 세월호 희생자 정부 공식 합동분향소에서 열린 총회에서 투표를 통해 여야 세월호 특별법 재합의안을 거부하기로 의결한 뒤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안산=이재문 기자
◆합의안 추인이냐 ‘재재협상’이냐

새정치연합은 이날 하루 종일 유가족을 설득하는 데 안간힘을 썼으나 실패했다. 특히 유가족이 진상조사위의 수사권, 기소권 확보를 요구해 새정치연합이 재재협상을 추진할 수 있는 틈새도 사실상 막혀버렸다. 당 핵심 관계자는 “그렇게 결정된 이상 우리가 할 수 있는 여지가 너무 없어졌다”며 “의원총회를 열어도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답답해했다.

당의 선택지는 2차 합의안을 의총에서 추인해 특별법을 처리하는 것과 여당에게 재재협상을 제안하는 것 중 하나다. 강경파가 당내 여론을 주도하는 터라 유가족이 반대하는 합의안을 추인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의총에서 합의안 추인이 거부되면 당은 예측하기 힘든 격랑 속으로 빠져들 수게 된다. 무엇보다 박 위원장 체제에 대한 거취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한 중진 의원은 “대표(박 위원장)한테 다시 재협상을 하라고 할 수 있겠느냐”며 “그럴 경우 대표가 물러나 지도부 공백상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새 지도부가 선출되더라도 전망은 어둡다. 한 의원은 “새 지도부가 구성되더라도 (새누리당과)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2번의 합의안 파기로 운신의 폭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새정치연합은 일단 21일 비공개 당직자회의를 열어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박범계 원내대변인은 “유가족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컨셉트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전했다. 한 때 비상의총이 21일 잡혔다는 얘기가 돌았으나 박 대변인은 부인했다. 조정식 사무총장은 “지금같은 상황에서 쫓기듯이 일을 처리하는 것보다 냉각기가 필요하다”며 “재협상도 쉽지 않아 당내 의견을 모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유가족에게 냉대만 받은 지도부

박 위원장은 몸을 낮추고 서울과 경기 안산을 오가며 유가족을 설득하는 데 주력했다.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을 찾아 단식중인 ‘유민 아빠’ 김영오씨를 면담했다. 박 위원장은 면담 후 기자들과 만나 “저희가 잘못이 있으니 용서해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재협상 가능성에 대해서는 “그건 못한다고 말씀드렸다”고 밝혔다. 유가족을 설득해 합의안을 관철하겠다는 정면돌파 의지를 밝힌 것이다. 박 위원장은 “오늘 당 회의에서 ‘박 대통령이 유민 아빠를 만나 달라. 대통령이 만나주시면 유민 아빠가 대통령의 말씀을 들어보고 단식을 중단하겠다고 한다’는 발언을 하겠다고 하니 유민 아빠가 그렇게 하라고 했다”고 전했다.

설득했지만…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왼쪽)가 20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 세월호 희생자 정부 공식 합동분향소에서 유가족들에게 세월호 특별법 협상과정을 설명하던 중 한 유가족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고 있다. 유가족들은 이날 총회를 열고 여야의 특별법 합의에 반대키로 결정했다.
안산=이재문 기자
오후에는 안산 단원구 세월호 유가족 합동분향소에 마련된 회의장을 찾아 김병권 세월호 가족대책위 위원장과 유가족들을 만났다. 30분 가까이 합의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지만 유가족의 차가운 반응에 굳은 표정으로 발길을 돌렸다. 박 위원장은 김 위원장에게 “용서해 달라고 말하러 왔다. 저희가 최선을 다했으니 오늘은 저희가 좀 미워서 야단치더라도 어쩔 수 없다. 이것이 최선의 마음”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김 위원장은 그러나 “적(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을 이해한다는 건가.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며 “가족들은 하나도 찬성하지 않는다”고 반발했다. 다른 유가족들도 “야당이 한계가 있으면 빠져라”, “대책위는 수사·기소권을 수없이 외쳤는데 야당에서 포기했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대화를 지켜보던 일부 유가족은 자리를 박차고 회의장을 뛰쳐나가기도 했다.

당 소속 의원들은 이날 유가족 총회가 진행된 안산, 단식농성이 진행 중인 광화문, 시민사회 등을 찾아가 2차 합의안을 설명하고 유가족을 설득했지만 마찬가지로 진전을 보지 못했다. 특히 이날 저녁 안산에서 진행된 유가족 전체 총회에 원내부대표단과 의원 10여명이 방문했지만 유가족이 박 위원장과의 만남 이후 대화를 거부해 총회에 참석조차 못한 채 회의장 밖을 서성거렸다. 한 의원은 “유가족들이 불신의 벽이 너무 강하다”며 고개를 저었다.

안산=박영준 기자 yj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