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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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의 독도’ 격렬비열도 유인화… 영토 수호 첨병 만든다”

한국 최서단 무인도를 가다
“일본은 없는 섬도 만들어내는 판인데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해경 대원의 목소리는 격앙되어 갔다. 일본 얘기를 할 때에는 더욱 그랬다. 중형 경비함이 내뿜는 엔진 굉음, 추진 프로펠러 뒤로 날리는 거대한 물보라도 대원의 말을 가로막지 못했다. 그 뒤로 거대한 섬 하나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국토 최서단 무인도서이자 우리나라 서해 영해기점의 하나인 격렬비열도였다.

해양경찰청 중형 경비함 해우리 320호(300t)가 충남 태안 신진도항을 출발한 시간은 27일 오전 8시 정각. 최고 속도에 육박하는 30노트(시속 60㎞)로 달렸어도 격렬비열도 주변 해역까지 가는 데 1시간은 족히 걸렸다. 섬에 변변한 접안시설 하나 없는 탓에 소형 고속단정(RIB)으로 갈아탔고 출항 약 2시간이 지나서야 마침내 상륙할 수 있었다.

격렬비열도는 행정구역상 주소가 충남 태안군 근흥면 가의도리 산 28(동경 125도34분, 북위 36도34분)로, 약 1.8㎞ 간격으로 북·동·서 3개 열도로 구성돼 있다. ‘세 섬이 열을 지은 모습이 마치 날아가는 새들과 같다’는 의미를 섬 이름에 담고 있다. 무인등대 등 사람이 만든 시설물이 있는 곳은 북격렬비열도가 유일하다. 1909년 6월부터 등대관리원 3명이 거주했지만, 김영삼정부 때인 1994년 4월 ‘작은정부를 지향한다’는 명분으로 모든 인원이 철수했다. 중국 산둥반도와 고작 268㎞ 떨어져 있어 ‘날씨만 좋으면 중국에서 개 짖는 소리도 들린다’는 설(說)이 있고 공해까지 거리는 22㎞에 불과하다. 서격렬비열도는 우리나라 영해기점 23곳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우리 영해를 넘나드는 중국 어선의 불법어로가 잦고, 인천·평택·대산항 등 서해 주요 항구를 오가는 중국 선박도 대부분 격렬비열도 주변 해역을 통과한다. 북격렬비열도에서 관측된 중국발 황사와 초미세먼지는 3시간 후 서울 등 수도권에 다다른다. 

우리나라 23개 영해기점 중 하나로 최서단 무인도서인 서격렬비열도.
격렬비열도=이재문 기자
‘없는 섬도 만든다’는 해경 대원의 말은 작년 말 일본 태평양 해상 무인도 니시노지마 인근의 해저분화를 일컫는 것이다. 잇단 해저폭발에 작은 암초가 애초 크기의 10배 가까이 커지더니 결국 니시노지마와 연결됐고 일본 영토는 그만큼 확장된 셈이 됐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없던 섬이 새로 생긴” 경우다. 일본 정부는 이 외에도 새해 들어 영해기점의 주인 없는 외딴섬 280개 국유화를 추진하는 등 영해 관리에 더 열을 올리고 있으니 ‘무주공산’으로 방치된 격렬비열도를 보는 해경 대원이 분통을 터뜨릴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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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중국과 맞닿은 서해 최전선에서 영토·환경 지킴이 역할을 수행해 온 격렬비열도는 그간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일본의 영유권 주장으로 온 국민적 관심이 쏠리는 독도에 비하면 ‘서해의 독도’ 격렬비열도는 그 이름을 아는 사람조차 드문 형편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최근 격렬비열도에 다시 사람을 들이는 작업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는 점이다. 2011년 6월 대산항만청과 충남도, 태안군, 태안해경이 중국 불법어업 단속과 영토 수호를 위한 관계기관 합동 대책회의를 개최한 후 유인등대 전환 및 서해 전진기지 활용 방안이 꾸준히 모색돼 왔다.

예산 확보에 난항을 겪던 차에 충남 서산·태안을 지역구로 둔 새누리당 성완종 의원은 격렬비열도 유인화 사업의 물꼬를 텄다. 박근혜정부 국정운영 방향에 맞춰 대산항만청과 해당 지자체, 해경 등의 협업을 이끌어낸 뒤 기획재정부와 국회를 대상으로 한 전방위 설득에 나섰다. 그 결과 격렬비열도 등대 유인화 전환에 따른 2014년도 소요정원 3명이 확보됐고 오는 5월까지 인력 상주를 위한 사무실과 숙소, 부대시설 실시설계가 완료되면 격렬비열도는 20년 만에 공무원이 상근할 수 있게 된다.

북격렬비열도 정상에 무인으로 운용되는 기상관측장비들과 1994년 4월 등대관리원 철수 전까지 사용한 숙소 등 낡은 시설물의 모습. 정부는 이들 시설물을 정비해 공무원 3명을 연내 배치하고 헬기장을 신설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격렬비열도=이재문 기자
격렬비열도 유인화 작업 점검을 위해 현장 답사에 동행한 성 의원은 “서해에는 지금도 중국과의 배타적경제수역(EEZ) 획정을 위한 협상이 진행 중으로, 중국이 주장하는 EEZ는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도 침범해 새로운 분쟁의 소지가 될 우려가 있다”며 “영해기점으로,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격렬비열도 유인화 사업은 우리 영토와 영해를 지키기 위한 노력에 한치도 게으름이 없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늦었지만 참으로 다행인 일”이라고 말했다.

태안=김재홍 기자 hong@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