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마음 편히 쉬시길. 자유롭게 날아가길.’
23일 오후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추도식에는 1004마리의 나비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2008년 노 전 대통령이 생전에 전남 함평을 찾아가 만난 그때의 나비를 닮은 함평 나비였다. ‘나비 퍼포먼스’는 2017년 추도식 때도 열렸고 당시 행사에 참석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이를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추도식에는 문희상 국회의장과 이낙연 총리,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이인영 대표 등 국내 주요 인사들을 포함한 1만여명이 참석했다. 행사장 가운데에는 노 전 대통령의 유훈인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다”라고 적힌 묘비가 놓였다. 행사장을 가득 메운 참석자들은 뜨거운 햇볕 속에서도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세 번째로 추도사를 읽은 이 총리의 발언이 끝나자 박수와 함성이 터져나왔다. 이 총리는 “노 전 대통령께서는 생전에 스스로를 ‘봉화산 같은 존재’이자 연결된 산맥이 없는 외로운 산이라고 말씀하셨지만 봉화산은 하나가 아니다. 국내외에 수많은 봉화산이 솟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정부는 노 전 대통령이 못 다 이룬 꿈을 이루려 노력하고 있다”며 “(노 전 대통령이 강조했듯이) 저희들은 늘 깨어있겠다”고 강조했다.
1004마리의 나비가 이어 울타리를 벗어나 하늘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추도식장 맨 앞 줄에 앉은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가 나비들을 말없이 지켜보는 가운데 권 여사 옆에 앉은 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쳤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땀 흘리리라. 깨우치리라”는 ‘상록수’ 가사가 행사장에 울려퍼졌다.
앞서 추도사를 읽은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과 함께 이룬 업적을 소개하며 그리움을 전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저희는 양국 교류를 촉진하기 위해 대한민국의 비자 면제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중요한 위상을 인정하기 위해 한국을 G20(주요 20개국) 국가에 포함했다”며 “한국의 인권에 대한 노 전 대통령의 비전이 국경을 넘어 북에까지 전달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문 의장은 현 정치권의 안타까움을 전하며 남은 이들이 더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문 의장은 “새로운 100년을 시작하는 중요한 시기에 정치가 길을 잃어가고 있다”며 “그러나 하늘에서 도와달라고, 지켜봐달라고 말씀드리지는 않겠다. 이 짐은 이제 남아있는 우리가 해야 할 몫”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부디 당신을 사랑한 사람들과의 추억만 간직하고 평안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도 이날 “노 전 대통령이 남겨놓은 꿈을 이어가자”며 한목소리로 논평을 냈다. 민주당 이해식 대변인은 “노 전 대통령이 추구했던 반칙과 특권 없는 정의로운 나라를 만드는 일은 10년이 지난 오늘에도 우리의 목표이고, 촛불 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정부의 국정과제로 고스란히 계승되고 있다”고 말했다.
바른미래당 최도자 수석대변인도 “노 전 대통령의 삶은 지역주의와 권위주의를 깨뜨리고 우리 정치를 변화시키기 위한 끊임없는 도전이었다”며 “이념과 진영을 떠나 그분이 남겨놓은 꿈을 새롭게 이어가는 것이 우리 정치권에 주어진 과업”이라고 강조했다. 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이날 추도식에 참여하지 않고 공식 논평도 내지 않았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