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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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이 미래다] 일자리 없는 동독… 젊은이 줄줄이 떠나 ‘미래없는 도시’로

활력 잃은 ‘호이어스베르다’
화폐통합, 산업기반 붕괴 원인
구동독 지역의 소도시 호이어스베르다에서 태어난 고등학생 마르셀 슈토플러(18). 통일 후 세대인 그는 독일 분단과 통일의 정치적 의미는 모른다. 그가 아는 것은 독일은 커졌고, 자신의 고향은 자꾸 작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이 도시에서 자라는 동안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다른 도시로 떠나면서 주택은 철거됐고 수많은 이들이 오가던 기차역도 작아졌다.

이 도시에서 일어났던 네오나치의 극우테러 얘기를 꺼내자 그의 뺨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런 ‘고장난 인간들’ 때문에 사람들이 이곳 출신이라면 편견을 갖고 봐요. 미디어에서 내보내는 호이어스베르다의 모습은 부정적인 것뿐이죠.” 그는 고향의 따뜻한 사람들과 아름다운 환경을 좋아한다. 그러나 도시가 서서히 줄어들면서 겪는 부작용에 따른 상실감은 어쩔 수 없다. 

◆활력과 미래가 없는 도시

작센주 동부 바우첸 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인 호이어스베르다는 동독이 자랑하던 이상적인 계획도시였다. 동독 시절 유럽 최대 갈탄 생산지로, 탄광 노동자 5만여명이 이주하며 마치 19세기 미국의 ‘골드 러시’와 같은 개발 열기에 휩싸였다. 늘어난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호이어스베르다의 신도시에 한국의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 플라텐바우가 대거 들어섰다. 동독인들은 사회주의식 도시계획의 모델인 플라텐바우에서 사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독일 통일 무렵 갈탄 산업은 경쟁력을 잃었다. 산업단지가 문을 닫으며 인구가 급속도로 감소했다. 통일 직전 7만2000명에 달했던 주민은 지난해 기준 3만7000여명으로 반토막이 났다.

호이어스베르다 신도시 중심의 쇼핑몰 라우지츠 센터 앞에서 다른 노인들과 마찬가지로 무료하게 앉아 있던 에리카 볼프(80) 할머니는 “자식 네 명 중 한 명만 이곳에 남고 나머지는 드레스덴, 뮌헨 등에서 일한다”며 “집세가 대도시의 절반 수준임에도 일자리가 없어 젊은이들이 모두 떠났다”고 말했다. 2만채가 넘던 플라텐바우는 통일 후 7500채가 철거됐다.

취업난과 함께 극우세력이 세를 불렸고, 이민자에 대한 정서가 악화됐다. 1991년 네오나치주의자 500여명이 쇠파이프와 화염병을 들고 호이어스베르다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모여 사는 주택을 습격해 30여명이 부상했다. 이 사건으로 호이어스베르다는 외국인 혐오와 극우 테러의 상징으로 낙인찍히는 불명예까지 얻게 됐다.

독일 소도시 호이어스베르다에 대거 들어서 있는 공동주택 플라텐바우의 모습. 동독 시절 이상적인 거주 형태였던지만 지금은 흉물로 전락했다.
호이어스베르다=백소용 기자
◆구동독 재건과정의 교훈


통일 후 구동독 도시 대부분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호이어스베르다와 비슷한 인구 감소 문제를 겪고 있다. 장벽 붕괴 이후 1670만명에 이르던 옛 동독 지역 주민 가운데 170만명이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났다. 구동독에서 인구가 줄지 않은 도시는 드레스덴, 라이프치히, 포츠담, 예나 등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인구 감소 현상의 핵심은 일자리다. 통일 후 경쟁력을 잃은 구동독의 산업 기반이 무너지면서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구서독으로 떠나고,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구동독 기업들이 문을 닫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독일 연방통계청에 따르면 실업률은 1991년 서독이 6.2%, 동독이 10.2%였지만 지난해에는 각각 6.8%와 11.4%로 격차가 벌어졌다. 게다가 앞으로 구동독 지역에 대한 지원금이 줄기 때문에 구동독 도시들은 자립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통일 후 구동독 도시 재건과정의 문제점을 피하기 위해 한국은 오랜 시간에 걸쳐 통일비용을 비축하고 이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등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구동독 지역의 경제를 구서독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독일은 약 1조5000억유로(약 2000조원)를 지출했다. 이러한 지원금은 건설 등의 프로젝트에 집중됐고 일자리 창출 등의 자립 기반 마련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구동독 산업의 경쟁력을 잃게 한 결정적 원인인 독일의 화폐통합 정책도 고민해볼 대목이다. 통일 직전 서독 마르크화는 동독 마르크화보다 4배 정도 가치가 높았지만 통일 후 일대일로 교환되며 동독 마르크화가 평가절상됐다. 이에 따라 동독 상품의 가격 경쟁력이 약화되면서 판매 시장을 잃게 됐고 산업 붕괴로 이어진 것이다. 이는 동독에서 서독으로의 인구이동 문제를 낳았다. 북한 역시 경제적 자생 기반 마련에 실패한다면 급속한 인구이동으로 노령화, 사회 갈등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호이어스베르다=백소용 기자 20120704022153 풀B/고대사 비밀 칠지도 복원됐다. 독일 소도시 호이어스베르다에 대거 들어서 있는 공동주택 플라텐바우의 모습. 동독 시절 이상적인 거주 형태였던지만 지금은 흉물로 전락했다. 호이어스베르다=백소용 기자 //mimg.segye.com/content/image/2012/07/04/20120704022153_0.jpg 1 8 09 6 저작자 표시 + 변경금지 N 20120704022552 [통일이 미래다] “무책임한 퍼주기 정책, 동독 자립기반 무너뜨려” 20120704164448 20120704180016 20120704175631 “준비되지 않은 통일은 재앙이다.”독일 유력 일간지 디 벨트의 우베 뮐러(사진) 기자는 2005년 저서 ‘대재앙 통일(Supergau Deutsche Einheit)’을 통해 이같이 선언했다. 통일 후 재건과정의 실수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 정치권을 겨냥한 일침이다. 통일의 정치적 의미만 강조한 나머지 경제적 문제를 덮어두려는 정치권의 ‘침묵 카르텔’을 깨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통일 직후인 1990년부터 12년 동안 구동독 지역 특파원으로 일하며 통일 후 변화상을 다뤘다. 그는 통일 후 무책임한 퍼주기식 정책이 오히려 구동독 지역의 자립 기반을 무너뜨렸으며, 앞으로 지원금이 점차 삭감되면서 대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했다.그는 “통일 후 강한 것은 더 강해지고 약한 것은 계속 약해졌다”며 “유감스럽게도 구동독 도시 대부분은 소실되는 지점에 서 있다”고 말했다. 책이 발간된 때 독일은 ‘유럽의 환자’로 불리며 경제적으로 수렁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각종 경제지표가 호조를 보이며 명실상부한 유럽연합(EU) 최대 경제국으로 자리잡았다. 뮐러 기자는 “통일 후 지원금으로 인한 변화는 적었고, 대신 독일의 임금 긴축 정책으로 다른 유럽 국가들의 국민경제와 비교해 경쟁력이 생겨 현재 독일이 유럽의 ‘기관차’로 자리매김했다”며 “과정과 상관없이 성공한 역사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고 꼬집었다. 통일이 현재 독일의 경제 호황에 미친 효과는 미미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통일 후 국제사회에서 독일 위상이 올라갔다는 부분에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독일은 EU뿐만 아니라 국제사회를 이끄는 핵심 국가로 도약했다.그는 “현재 독일은 유럽의 가장 큰 국민경제를 형성하고 있으며 지정학적으로 EU의 중심지로, 이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역할”이라며 “통일 독일은 냉전을 통해 분단된 동유럽과 서유럽의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남북한의 경제규모 차이와 교류 단절 등 통일 전제조건이 독일에 비해 불리한 상황이지만, 한국은 독일 통일 과정에 대한 학습을 통해 통일을 철저히 준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은 1990년 이후 독일 통일을 면밀히 모니터링했고 통일을 위한 별도의 부처가 있을 정도로 준비하고 있다”며 “준비된 통일은 축복”이라고 말했다. 백소용 기자 swini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