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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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강국의 길을 묻다] 핫이슈 부각 ‘사드 논란’ 진실은?

北 이외 中·러도 타격권… 韓, 외교마찰 우려 전략적 판단 신중
요즘 저는 한국 내에서 가장 핫한 군사 이슈 중 하나입니다.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계 핵심으로 불리기도 하죠. 저를 제목으로 한 소설까지 나올 정도니 인기가 꽤 높죠. 안녕하세요. 저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입니다. 저를 소개하자면 얼마 전 한국 정부가 우여곡절 끝에 차기전투기(F-X)사업 기종으로 선정한 F-35A 스텔스 전투기를 만든 미 록히드마틴에서 태어났습니다. 지상에서 최대 150㎞ 날아올라 적 미사일을 파괴합니다.

원래 미 MD 체계 아래에서 미 본토를 향해 날아오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1차적으로 바다 위 이지스함에서 발사되는 SM-3 미사일이나, 캘리포니아와 알래스카 등에 배치된 지상발사요격미사일(GBI) 등이 맡게 돼 있죠. 저는 이 미사일들이 요격에 실패했을 때 패트리엇(PAC-3) 미사일과 함께 최종단계에서 본토 방어에 나섭니다.

제원은 길이 6.17m, 무게 900㎏, 직경 34㎝로 최대 속도는 소리보다 8배 이상 빠른 마하 8.24에 달합니다. 성능이 좋다보니 발당 100억∼110억원 정도 합니다. 꽤 비싼 편이지요. 1개 포대 정도 꾸리려면 8000억∼1조원가량 비용이 듭니다. 1개 포대는 발사대 6기로 구성되고 1기당 8발의 미사일이 장착돼 총 48발을 발사할 수 있습니다.

해외파병 지역에 3개의 사드 포대를 추가 설치한다는 방침을 세운 미 정부가 이 가운데 1개 포대를 한국 평택에 배치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제가 논란거리로 등장했습니다. 북한이 지난 3월26일 동해상에서 실시한 노동미사일 발사 실험은 저의 도입 필요성을 더욱 강화시키는 계기가 됐지요. 그동안 노동미사일(사거리 1300㎞)은 일본과 주일미군을 공격하기 위한 것으로 분류됐습니다. 그런데 당시 실험에서는 사거리를 650㎞로 짧게 하는 대신 발사 각도를 높여 미사일 궤적의 최고 고도를 160㎞로 했습니다. 높이 띄워 남한을 사정권에 두면서 낙하 때 가속도가 더 붙게 하는 연습을 한 건데, 최고 낙하 속도가 마하 7 이상으로 확인됐습니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이 정도 속도면 PAC-3로도 요격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지상 20㎞ 내외의 하층방어를 맡는 한국형미사일방어(KAMD) 체계로는 역부족이라는 얘깁니다. 저를 도입할 경우 단언컨대 북한의 핵과 탄도미사일 억지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본질은 뒷전으로 밀리고 저를 둘러싼 입씨름이 빚어졌습니다. 주한미군에다 저를 데려다 놓고 쓰고 싶다는 미 정부의 러브콜을 한국 정부가 외면하는 듯한 행태를 보이면서 시작됐습니다. 언론에서는 한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협의 사실 공개를 기피하고 있다며 다양한 의혹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래저래 골치덩어리로 전락했어요.

왜 그럴까 따져 봤습니다. 먼저 저를 꺼리는 이유는 미국 MD 편입으로 보는 데 있습니다. 출생 자체가 MD와 연관돼 있으니 호적을 바꾸지 않는 이상 완벽한 설득은 힘들겠죠.

제가 뉴스에 나올 때마다 중국과 러시아가 발끈하는데, 이는 제가 미국 MD 체계의 일부로 저의 핵심 구성품에는 미사일 외에 AN/TPY-2라 불리는 고성능 X밴드 레이더가 있다는 데 기인합니다. AN/TPY-2는 최대 탐지거리가 1000㎞에 달합니다. X밴드는 파장이 짧아 적 탄도미사일을 먼거리에서 정밀하게 탐지하는 데 유용하죠. 석유시추선만큼이나 큰 해상배치 X밴드 레이더(SBX)보다 탐지거리는 짧지만 훨씬 작아 수송기로 실어나를 수 있을 만큼 기동성이 뛰어납니다.

중국 입장에선 자국 미사일 움직임이 이 X밴드 레이더를 통해 고스란히 탐지될 수 있으니 불편하겠죠. 겉으로 북한을 겨냥했다지만 실상 중국과 러시아를 동시에 압박하는 형국이니 그럴 법도 합니다. 저는 ICBM이 떨어지는 단계의 상층부 타격뿐만 아니라 발사 초기 상승단계에서도 타격이 가능합니다. 중국의 탄도미사일에 대한 선제적 방어 성격이 강하다는 겁니다. 현재는 오키나와에 있는 이 레이더가 중국 연안까지 커버하고 있는데, 제가 한반도에 배치되면 중국 대륙 대부분이 미군 작전 반경에 속하게 되겠죠.

한국 정부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질 수도 있다며 되도록 언급을 회피하며 신중한 입장을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지사입니다. 일각에선 한국 정부가 사실상 저를 주한미군에 배치하는 쪽으로 방침을 정하고도 중국과의 마찰 등을 우려해 배치설을 흘리고 있다는 추측을 내놓기도 합니다. 물밑협상 의혹을 부인하지만 미국이 이미 올해 초 한국에서 사드 포대가 들어설 부지 조사를 실시해 평택이 선정됐다는 말까지 도는 걸 보면 이러한 의구심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런 와중에 지난 13일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오는 23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안보협의회(SCM)에서 저의 주한미군 배치 문제를 의제에 포함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시기 연기 문제와 함께 한·미 간 주요 군사현안으로 양국 국방장관의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는데 이를 정면 부인한 겁니다. 왜 그랬을까요. 저는 협상 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논의 자체를 부인해온 것도 이런 이유로 판단됩니다. 먼저 제 문제를 꺼낸다면 뒤따르는 비용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겠죠. 그래서 한국은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담판을 통해 해법을 찾도록 분위기를 몰고 갈 가능성이 큽니다.

사실 미국도 어려운 재정 여건상 한국에 저를 배치할 처지가 못됩니다. 미국 내에서 펜타곤 관련 인사들이 자꾸 저의 한국 배치를 언급하는 것은 어쩌면 국방예산을 좀 늘려 달라는 하소연일 수 있습니다. 한국 정부가 SCM에서 제 문제에 입을 다문다면 미국이 먼저 말을 꺼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그래서 사드 포대만 들여오고 X밴드 레이더는 추후에 들여오는 절충안이 거론됩니다.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북한을 견제할 수 있는 포석이죠.

그럼 저를 두고 벌이는 신경전의 최종 승리자는 누굴까요. 입을 닫고 오래 버티는 쪽이 유리할 수 있겠죠.

얼마 전 한민구 국방장관은 사석에서 “사드와 관련해 아직까지 공식이든 비공식적으로든 보고를 받은 바 없다. 그리고 장관이 이 문제를 미측과 협의한 적도 없다. 언론들이 지레짐작으로 얘기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라고 잘라 말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보인 한국 정부의 행동도 이러한 전략적인 판단에서 이뤄진 제스처가 아닐까요.

박병진 군사전문기자 worldp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