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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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일상 톡톡] '만년 조연' 한식, 주연 되다

<편집자주> 이제 한식은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확실한 키워드가 됐습니다. 일명 ‘미각의 시대’, 사람들은 점차 맛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특히 건강 먹을거리를 선호합니다. 늘어가는 1인 가구 시대, 밥상의 정을 그리워하는 개인들은 TV의 이른바 ‘먹방’을 보며 대리 만족하고, 보는 것을 넘어 따라 만들고 싶어 합니다. 이 같은 ‘한식의 재해석’은 올해의 외식 키워드이기도 합니다. 실제 외식 소비자 3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5년 외식 트렌드 3대 키워드 중 하나가 한식의 재해석이었습니다. 전통 한식을 그대로 재현하는 게 아닌 현대화된 컨셉트에 맞춰 세련되고 모던하게 재해석한 것으로, 전통적인 요소를 통해 건강한 음식의 이미지를 주는 동시에 감각적인 인테리어나 캐주얼한 서비스 방식을 접목한 새로운 범주의 외식 트렌드를 말합니다. 이 가운데서도 최근 세대를 불문하고 소비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는 한식뷔페의 현황과 전망에 대해 살펴 봤습니다.

#1. 직장인 김모(42)씨는 부모님 생신을 맞아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한식뷔페를 찾았다. 오후 4시30분 앞 대기팀만 100여팀이 남아 있었다. 김씨는 “2시간여를 기다리다 그냥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며 아쉬워했다.

#2. 주부 박모(36)씨는 모처럼 가족 외식을 하기 위해 한식뷔페 예약을 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예약을 하지 못했다. 박씨는 “당월 예약은 이미 전달 1일에 실시하는데, 이 조차 하루만에 예약이 만료됐다”고 밝혔다.

#3. 대학생 최모(22·여)씨는 지난 주말 분당신도시에 위치한 한식뷔페를 방문했다. 저녁을 먹기에는 조금 이른 오후 5시30분쯤 매장을 방문했지만 이미 대기 시간이 2시간이다. 최씨는 “이미 매장 입구에는 30여명의 사람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며 “8시가 다 돼서야 자리에 앉아 저녁을 먹을 수 있었으며 40~50대 부부모임,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 모임 등 다양한 사람들이 방문했다”고 말했다.

한식뷔페가 뜨고 있다. 과거 서양식 패밀리레스토랑이 외식업계를 주름잡던 것처럼 최근에는 저렴한 가격에 다양하고 푸짐한 한식을 즐길 수 있는 한식뷔페가 인기다. 기존 외식 브랜드들이 3만~4만원대의 메뉴로 구성된 것과 달리, 1만~2만원대의 합리적인 가격 또한 한식뷔페 인기의 한 이유다. 과연 이익을 낼까 싶을 정도로 가격 대비 질이 높다는 평가다.

A 한식뷔페 관계자는 “2~3월은 졸업식과 입학식이 몰려 있어서 이미 예약이 꽉 찼다”며 “직접 매장에 와 대기한 후 들어가는 방법 밖에 없다”고 언급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이 같은 한식뷔페 열풍은 2013년 1월 중견업체 푸른마을이 운영하는 '풀잎채'가 시초다. 경남 창원의 롯데백화점 영플라자관 전문식당가에 입점했다. 이후 그 해 7월 경기도 판교에 문 연 CJ푸드빌의 계절밥상이 뛰어들면서 대기업들이 가세했다. 그 뒤 ▲놀부NBG의 'N테이블' ▲이랜드의 '자연별곡' ▲신세계푸드의 '올반'까지 뛰어들었다. 올해 상반기에는 롯데가 '별미가'라는 브랜드로 한식 열풍에 동참했다.

외식업계 관계자들은 서구화된 식단에 대한 반발과 건강식에 대한 수요, 합리적인 가격 등이 반영된 결과로 분석하고 있다. 건강과 다이어트에 관심이 많은 20~40대 여성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한식뷔페 열풍이 불었고, 기존에 없던 새로운 컨셉트의 외식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되면서 '미래의 외식 먹거리'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현재 CJ푸드빌의 계절밥상은 7개 매장을 운영중이지만, 이번달 일산과 평촌에 추가 매장을 오픈할 경우 매장 수는 총 9곳으로 늘어난다. 지난해 7월 경기 판교에 첫 매장을 연 후 1년4개월간 누적 방문객 수가 120만명을 넘었다. 제철음식과 농가상생이 집밥을 갈구하는 현대인들에게 들어맞았다. ▲쌈채소(경남 밀양·전남 무안) ▲토마토 샐러드(충남 논산) ▲속배추 쌈밥(강원도 횡성) 등 지난 1년간 총 100여종이 넘는 제철 메뉴를 선보이고 있다. 제철 식재료를 이용한 다양한 메뉴도 강점이다. 지역 농민이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판매하는 '계절 장터'는 주부들에게 인기가 높다. CJ푸드빌 관계자는 “한식 샐러드바 레스토랑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는 브랜드로서, 앞으로도 더욱 많은 고객들에게 건강한 한식을 선보일 수 있도록 새로운 시도와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랜드의 자연별곡은 왕의 이야기가 담긴 팔도진미를 컨셉트로 분당 미금점에 1호점을 개장했다. 지난달 23일 일산 뉴코아아울렛에 이어 6일 강남 NC백화점에 자연별곡 매장을 오픈해 총 22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팥죽 퐁듀 ▲오미자 셔벗 ▲흑임자 아이스크림 등 전통 주전부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디저트는 단일 메뉴로 팔아도 손색이 없다. 자연별곡은 올해 50여개까지 매장을 늘릴 예정이다. 자연별곡의 강점은 가격이다. 평일 점심의 경우 자연별곡이 계절밥상이나 올반보다 약 1000원 저렴하고, 주말과 저녁의 경우 3000원 정도 가격이 낮다.

지난해 10월 서울 여의도에 문 연 '올반' 역시 한달여만에 3만명이 다녀갈 정도로 인기다. 올반도 정통 한식을 표방한다는 점에서 계절밥상과 비슷하나 인테리어 면에선 차이가 크다. 계절밥상이 시골 장터에서 친근하게 한식을 먹는 느낌이라면, 올반은 모던한 레스토랑에서 우아하게 즐기는 기분이다. 이곳 역시 유기농 인증을 받은 지정농장을 통해 쌈배추 등 30여종의 쌈채류 품목을 직매입한다. 직접 현장에서 도정한 쌀로 밥을 짓는 등 '오픈키친' 콘셉트가 강점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한식뷔페의 인기는 언제까지 지속될까. 당분간은 한식과 웰빙에 대한 고객들의 니즈가 높아 한식뷔페의 인기가 이어질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한 관계자는 "1인 가구의 주축인 20∼30대가 집밥과 유사한 한식뷔페를 선호하면서 전 연령대가 두루 좋아할 수 있는 아이템으로 한식이 각광 받고 있다"며 "한식뷔페는 매장 출점 제약도 받지 않아 당분간 성장세는 꾸준히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국내 외식산업이 전반적으로 침체지만 고품질·합리적 소비를 추구하는 소비 성향이 외식 시장의 한 축으로 형성되면서 한식뷔페에 대한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며 "질 좋은 식재료와 차별화된 조리법 개발, 친절한 서비스 등이 중요한 경쟁력 요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질 좋고 건강한 먹거리에 관심이 많은 요즘, 한식뷔페가 타이밍 좋게 등장했다는 분석도 있다. 한 외식 전문가는 “동남아 등 다른 문화권에서 한류가 인기를 얻으며 한식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다”며 “최근에는 소비자들이 한식을 더 트렌디하게 느낀다”고 설명했다.

이어 "1인 가구의 주축을 이루는 20∼30대가 외식 때 집밥과 유사한 한식뷔페를 선호하면서 전연령대가 두루 좋아할 수 있는 아이템으로 한식이 각광 받고 있다"며 "목 좋은 자리를 선점하려는 기업들의 한식뷔페 출점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