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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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미의 짜이 한 잔] 신들의 땅에서 다시 인간의 세계로

<5> 티베트 떠나 네팔로

티베트는 어디를 가든 산을 넘어야 한다. 마을은 해발 3000m 정도에 만들어지는데 그 정도만 해도 티베트에서는 낮은 편이다. 산은 보통 4000∼5000m 높이이므로 이를 넘어가려면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가야 한다. 이 높은 산에 길을 만들어 놓은 것도 신기하고, 그 길을 차가 달리고 있다는 사실도 놀랍다. 사실 더 놀라운 것은 사람이다.

초모랑마는 바라보는 것조차 쉽지 않은 산이다.
사람이 이 높은 곳까지 걸어서 다닌다. 그냥 걸어다닌다면 놀라지도 않을 것이다. ‘오체투지’를 하면서 걸어다닌다. 오체투지는 신체 다섯 부위가 땅에 닿도록 엎드리는 행위를 말한다. 자신을 극도로 낮춤을 의미한다. 양 무릎과 팔꿈치, 그리고 이마가 땅에 닿게 절을 하면서 산을 넘는 이들을 보면 경이롭기까지 하다.

거대한 산과 자연만 존재하는 이곳에서 인간이 이렇게까지 경이롭게 보인다는 사실이 놀랍다.

초모랑마는 쉽게 길을 내주지 않는다.
흙으로 만들어진 산에 눈이 덮여 있을 뿐, 초록색 나무는 전혀 없다. 색이 보이는 건 여기저기에 매달려 있는 오색천뿐이다.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 등 빛바랜 천들이 펄럭인다. 천 하나하나에는 이들이 간절히 담은 소망이 각인되어 있다. 바람에 날려 신에게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내 소원도 살며시 날려 보냈다. 바람에 날리는 모습을 보니 소원이 어디론가 전해지고 있는 것만 같다. 

초모랑마를 보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로 향하는 길을 간다. 그곳을 갈 수 있을지는 내가 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에베레스트산은 티베트어로 ‘초모랑마’라고 한다. 초모랑마는 ‘대지의 여신’ 또는 ‘세계의 어머니’라는 뜻이다. 아메리칸 인디언들이 대지는 어머니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대지는 모든 것을 품어주는 어머니 같은 존재다. 이 이치를 인디언들이나 티베트 사람들은 자연과 함께하면서 이미 수천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 소중함과 위대함을 현대에 사는 내가 쉽게 잊고 살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쓰라려 왔다. 초모랑마가 보이는 한 산의 정상에서 그 위대함을 한눈에 보았다. 팅그리에서 언덕에 올랐을 때도 초모랑마가 보였지만, 이곳에 오르니 더욱 가까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곳에 갈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감히 저 위대한 산을 가까이라도 갈 수 있을까.

네팔 코다리는 안개가 자욱해도 나무가 숨 쉬는 곳이다.
아직 베이스캠프가 열리지 않아서 초모랑마를 8㎞ 앞두고 뒤돌아섰다. 대지가 허락할 때만 갈 수 있는 곳이다. 근처 마을에서 밥을 먹고 국경으로 향했다. 초모랑마는 다음에 왔을 때 오르기 위해서 남겨두고 떠났다. 다음날 아침에 도착한 국경 마을은 재미있는 풍경을 선사해줬다. 지금까지의 티베트 마을과는 전혀 달랐다. 나무가 갑자기 많아졌고, 푸른 숲도 보이기 시작했다. 이 마을 이름은 ‘장무’. 같은 마을이지만 국경을 두고 네팔 쪽은 ‘코다리’라고 부른다.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네팔 돈으로 바꿨다. 이곳은 마치 면세점 같다. 실제 면세는 아니지만 가지고 있던 돈을 환전하고, 잔돈은 다 써버리게 되는 그런 공항에서 모습이 떠올랐다. 

국경 다리 아래로 흐르는 물조차 푸르게 느껴졌다.
같은 마을이지만 다른 나라, 장무에서 코다리로 가려면 다리를 건너야 한다. 이름하여 ‘우정의 다리’다. 국경 마을에 다리를 놓아야 건널 수 있는 곳이라면 꼭 이런 이름이 붙는다. 친교를 뜻하기 위해서다. 이 다리 아래로는 물이 콸콸 흐르고 있다. 튼튼해 보이지 않는 이 다리를 건너면서 겁이 나기보다는 사방으로 보이는 초록빛을 내는 자연색에 더 심취됐다. 오랜만에 보는 아름다운 자연색이 반가웠다. 다리를 다 건너면 코다리다. 코다리에서 제일 처음 들러야 하는 곳은 이민국이다. 허름한 사무소에 들어가서 간단한 서류를 작성하고 돈을 지급하면 된다. 달러만 받으려는 이민국이 이상하게 느껴지더라도 달러를 줘야 한다. 이민국에서 통과를 안 시켜주면 그 나라에 갈 수 없다. 비상금으로 가져갔던 달러를 쓰게 하는 순간이다. 

네팔에 도착해서 보는 자연이 갖는 노란색에 감탄했다.
나를 가장 먼저 맞이해준 것은 노란 꽃이었다.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처럼 노란 꽃은 희망으로 다가왔다. 척박하고 경이로워서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던 티베트에서 빠져나와 네팔에 도착해 처음 본 노란색 꽃은 나를 홀가분하게 해줬다. 그동안 정신적인 압박으로부터 자유를 준 것만 같았다. 

네팔 국경에서 버스를 타고 산을 내려가야 하는데, 버스는 사람들이 가득 채워져야 출발한다.
나무가 숨 쉬는 곳에서 들이마시는 공기가 이렇게 달콤했던가. 모든 자연에 감사하며 흠뻑 감성에 취해 있을 때, 버스 경적 소리에 깜짝 놀랐다. 서둘러 짐을 싣고 나도 짐짝처럼 버스에 올라탔다. 작은 버스에서는 사람과 짐이 똑같이 취급된다. 다 구겨넣어 실으면 버스는 출발한다. 

어디로 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카트만두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는 없다. 가면서 계속 바꿔 타야 하는데, 언젠가는 도착하게 되어 있다. 

네팔 사람들이 더 활기차 보이는 이유는 내가 티베트에서 왔기 때문이다.
네팔 산 마을 사람들은 뭔가 더 활기차 보인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티베트에서 왔기 때문일 것이다. 산 중턱에 세워진 마을은 길 하나에 의존해서 집을 지었다. 하나뿐인 길에 문이 있고, 반대편 창문 쪽으로는 절벽이다. 모든 집이 이런 구조이기 때문에 집 안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은 기가 막힌다. 아이들이 뛰놀고 사람 소리가 들리는 마을에 도착하니, 내가 마치 다른 세계에 갔다 온 것만 같았다. 
티베트를 떠나며 고행해도 잃지 않았던 이곳 사람들의 미소를 기억하고 싶었다.
이런 감상에 젖으려고만 하면 나를 현실로 이끄는 것은 바로 내가 탄 버스다. 절벽 길을 달리는 버스는 구불구불한 산길에서 앞에 오는 차와 마주쳐도 전혀 개의치 않고 자신의 속도로만 달린다. 아슬아슬하게 비켜가는 차들 사이에서 놀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운전석 위치 때문이다. 익숙하지 않은 오른쪽 운전석은 도로와 차 방향이 모두 우리나라와 반대다. 내가 타고 있는 버스가 절벽으로 떨어질 것같이 왼쪽을 향하는 순간 심장이 덜컹한다. 이런 순간을 몇 번 거치고 나서야 다시 자연을 감상할 수 있게 된다. 이제는 자연보다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인구 수가 적은 티베트에 비해서 사람이 많다. 갑자기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모습을 보면 신기해져서 사람 한명 한명에게 인사를 한다. 인사조차 어려웠던 티베트에서 온 나에게 네팔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여행작가 grimi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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