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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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즐겁다, 공부가 재밌다"

도시 아이들, 강진 옴천초등교로 ‘산촌 유학’…자연과 함께하는 '힐링 교육'
학교에서 공부를 마친 학생들이 ‘홈스테이’ 집으로 향하고 있다.
“너 구구단 어디까지 외웠냐이∼”

전남 강진군 옴천초등학교 3학년 윤정이가 통학 버스 안에서 스케치북에 쓰인 구구단을 외우고 있는 친구 혜인이에게 진한 사투리로 묻는다.

통학버스 안에서 3학년 친구인 혜인이(왼쪽)와 윤정이가 구구단을 외우고 있다.
“이∼ 4단….” 모기 소리로 답하는 혜인이에게 “난 6단 다 외웠는디”라며 자랑하는 윤정이 목소리가 우렁차다.

학교로 가는 길에 서로 구구단 문제를 내고 버스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걸 그룹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한다. 즐거운 아침 통학길이다. “사랑합니다.” 아이들이 통학 버스에 오르며 기사 아저씨에게 큰소리로 인사한다. 경기도 안성에서 유학온 경탁, 민걸 형제는 취재 기자의 카메라가 신기한 듯 연신 기웃거리며 조잘거린다.

이 학교에 유학온 학생들이 늦깎이 초등학생 엄영숙(54)씨가 만들어준 자장밥을 먹고 있다.
늦깎이 학생으로 3학년에 재학 중인 엄영숙(54)씨 집에는 경남 창원에서 유학온 동현, 서울에서 온 우열, 충남 아산에서 온 승현이 ‘홈스테이’를 하고 있다. 아토피가 심했던 우열이는 이곳으로 내려온 뒤 거짓말처럼 증상이 없어졌다. 학원은 물론이고 PC방도 없어 수업을 마친 아이들은 얼른 집에 와 숙제를 하고 저녁을 먹는다. 오늘은 큰엄마라 부르는 엄씨가 자장밥을 준비했다. 게 눈 감추듯 그릇을 비운 아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소 우리로 몰려가 여물을 주기 시작했다. 

3학년에 재학 중인 최고령 학생 오정순 할머니(오른쪽)가 손주뻘인 아이들과 수업을 듣던 중 발표하기 위해 손을 들고 있다.
전국 3816개 시·군·구 가운데 40번째로 작은 강진군 옴천면 산자락에 자리 잡은 이 학교에는 도시에서 유학 온 11명과 늦깎이 학생 2명 등 전교생 30여명이 공부하고 있다. 1928년 개교한 옴천초등학교는 학생 수가 줄어 폐교 위기에 몰렸던 2013년 공모제로 부임한 임금순 교장이 아이디어를 내 ‘산촌유학’을 시작했다. 친환경, 청정지역의 장점을 살려 도시 학생들을 끌어들인 것이다. 전남 강진군과 유학생 본인이 반반씩 부담해 홈스테이 생활을 하며 자연과 더불어 학교생활을 한다. 임 교장은 “학생들이 자신의 색깔을 찾아 사회에서 감성을 지닌 리더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임금순 교장이 전체 독서를 마친 아이들을 일일이 안아주고 있다.
이른 아침 등교한 학생들은 독서실에 모여 책을 읽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독서시간이 끝나면 임 교장이 ‘사랑합니다’ 하며 일일이 학생들을 안아준다. 중국에서 유학 온 1학년 상우는 담임의 도움을 받으며 서툰 한글을 익히고 있다. “공부가 너무 재미있다”는 이 학교 최고령 학생인 3학년 오정순(74) 할머니와 엄씨가 20대 담임의 말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연필을 꾹꾹 눌러 공책에 받아 적는다. 

학생들이 방과후 수업으로 사물놀이를 배우고 있다.
3학년 아림이가 운동장에서 발견한 지렁이를 들어 보이고 있다.
방과 후 수업과 토요스포츠 프로그램도 풍성하다. 학생들은 사물놀이, 바이올린, 플루트, 탁구, 풋살 등을 배우며 우정을 쌓는다. 4학년 단짝 친구인 규민, 영우, 정수, 경탁이는 서툰 솜씨로 탁구를 치며 깔깔 거린다. 비 온 뒤 학교 운동장에서는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미꾸라지만 한 지렁이가 발견된 것. 자그마한 체구의 3학년 아림이가 지렁이를 번쩍 집어 올려 닭 모이로 준다며 닭장으로 뛰어가자 아이들이 우르르 따라나선다. 

타지에서 유학 온 학생들이 위탁가정에서 키우는 소의 여물을 주고 있다.
봄비를 맞아 더욱 싱그런 옴천초등학교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사진, 글=이제원기자 jw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