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역 플랫폼에서 기다리는 시간은 지루하지 않다. |
역시나 한 시간 두 시간이 흘러도 기차가 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무작정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자리를 펴고 바닥에 앉았다. 누구에게 가서 물어보거나 항의할 필요도 없다. 인도에서 기차 연착이란 당연한 것이라 이해하고, 그 시간을 즐겨야 한다. 언제 올지 모를 기차 때문에 불안해하거나 걱정하지 말고, 책이라도 읽으며 편안한 마음으로 언젠가는 꼭 올 기차를 느긋하게 기다려야 한다. 배낭에 몸을 기대고 편안하게 쉬면서 책도 읽고 군것질도 하면서 있었는데, 재미있는 광경을 목격했다. 바닥과 벽면 틈에 난 작은 구멍으로 쥐 가족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덩치가 큰 쥐가 사람들 사이로 흘러들어 가서 먹을 것을 갈취해 물고 그 구멍으로 들어갔다. 구멍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작은 쥐들이 많았다.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쥐 가족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따뜻한 가족애도 느끼고, 그러다 잠깐 졸기도 했다. 꿈에서 쥐구멍으로 들어갔더니, 그곳에는 쥐들이 집을 예쁘게 꾸며놓고 나를 환영해주었다. 눈을 떠서 쥐구멍을 보니, 여전히 쥐들이 있었다. 꿈을 더 꿨다면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라도 될 뻔했다. 이곳이 인도이기 때문에, 그리고 아직은 바라나시 기차역이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생겼다. 바라나시는 끝까지 나에게 환상과 현실을 헷갈리게 하는 곳이다. 바라나시를 떠나는 일조차 쉽지 않다는 걸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
평화로운 바라나시의 기차역 풍경. |
5시간 이상 연착되는 기차는 기본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처음에는 사람들에게 계속 물어봤다. ‘왜 안 오는지, 언제 오는지, 오기는 하는 건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묻고 물었다. 사람들은 시계를 보는 척하면서 온다는 희망만 얘기해줬지, 다른 답변은 주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나만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차피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다 함께 기다려야 한다. 그 시간을 나만 초조하게 보내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나를 포함한 외국 여행객만 그러고 있었다. 인도인들은 자기 할 일을 하면서 심지어는 여유까지 보이면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안개가 잦은 이 지역에서 아침에 안개가 끼었다면, 열 시간은 연착될 수 있다는 예측 정도는 해야 했다.
마음 편히 기다리기를 10시간이 넘어가서야 기차가 도착했다. 기차가 도착하기 얼마 전부터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기차가 도착하면 어디서 나타난 사람들인지 분주하게 움직이는 이들로 기차가 꽉 들어찬다. 짐만 보내는 사람들, 먹을거리를 파는 사람, 나 같은 여행자들, 그리고 빠질 수 없는 짜이를 파는 사람들까지 플랫폼과 기차 안을 채웠다. 비교적 가까운 거리라서 침대칸 말고 가장 낮은 등급인 좌석을 선택했다. 뚫려 있는 창문 덕분에 덥지는 않았지만, 문제는 시간이 지나갈수록 그 바람이 춥다는 것이다. 기차표에 명시되어 있는 시간보다 10시간이 늦어도 꼭 도착은 하는 이 기차처럼 힘든 일도 반드시 지나간다. 다음날, 카주라호에 도착한 나를 보면 모든 일은 시간이 지나가면서 같이 지나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일들도 언젠가는 지나간다.
기차 안 창문은 유리가 없다. 불어오는 바람을 몇 시간 맞으면 춥다. |
바라나시에서 카주라호까지 얼마가 걸린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거리상으로는 400㎞ 정도 되지만, 시간으로 대략이라도 알 수가 없다. 10시간이면 올 줄 알았던 카주라호를 나는 하루가 걸려서 도착했다. 버스로 간다면 정확할 것 같지만, 그것도 인도에서는 알 수가 없다. 택시를 전세내서 가는 게 그나마 정확한 시간에 도달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시간이 많은 배낭여행자는 대부분 기차를 선호한다. 어쩌면 모험처럼 기차를 타기도 한다. 인도에서 기차를 타는 일은 단순히 이동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삶에서 필요한 몇 가지를 배우게 해준다. 특히 인내심에 훌륭한 수업이 된다. 빠르게만 살았던 도시 속 삶에서는 10분 연착이라는 말도 상당히 크게 느껴진다. 10시간 연착이라는 말이 흔하게 느껴지는 인도와의 이 대비 감은 어떤 의미일까. 10분도 10시간도 상대적인 시간에서 본다면 같은 시간일 뿐이다.
기차에서 내린 후 버스로 갈아타서 도착한 곳이 카주라호다.
버스 모양도 예쁘게 느껴진다. |
카주라호에 발을 내디디며 깨끗하다고 느끼는 나 자신에게 놀랐다. 바라나시에서 왔기 때문일 것이다. 객관적으로 본다면, 카주라호도 길거리에 파리떼가 진을 치고 있고, 음식을 시키면 파리가 먼저 식사를 하는 곳이다.
카주라호 마을의 작은 가게. |
깨끗한 카주라호의 거리. |
카주라호는 바나라시에 비해서는 아주 깨끗한 마을이다. |
멀리 보이는 석상을 내일은 보러 가야겠다고 다짐하면서 바라만 봤다. |
여행작가 grimi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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