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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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미의 짜이 한 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

<13> 타지마할
강가에서 바라본 타지마할은 노을이 질 때 가장 아름답다.
아그라에 가는 건 ‘타지마할’이 있기 때문이다. 정말 유명한 관광지는 의무감으로 가게 된다. 인도에 여행을 갔으니, 타지마할은 보고 와야 할 것만 같은 의무감이 든다. 인도 관광에서 빠질 수 없는 명소이고, 배낭여행자조차 비싼 입장료를 지급하면서 들르는 곳이다. 하지만 타지마할에 대한 감상은 엇갈린다. 사진으로 너무 많이 봐와 이미 알고 있는 모습이어서 그런지 호불호가 갈리는 곳 중 하나다. 본인이 좋아하게 될지, 별로라고 평가하게 될지는 직접 가서 눈으로 봐야 결론이 난다. 
타지마할은 기차역 정거장 이름에도 그려져 있다.

아그라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였고, 급하게 타지마할을 보고 싶지 않았다. 다음 날 차분히 둘러보고 느껴 보고 싶었다. 숙소에서 짐을 풀고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식당을 찾았다. 오르차에서 왔기 때문에 상대적인 것들이 있었다. 오르차보다 상대적으로 아그라가 큰 도시처럼 느껴졌고, 음식이 맛있게 느껴졌다. 며칠 동안 먹고 나서야 안 사실이지만, 아그라 음식이 맛있는 편은 아니었다. 
채식주의 마을에서 왔기 때문에 고기를 먹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단지 채식주의 마을에서 왔기 때문에 고기를 먹을 수 있어서 처음에는 맛있게 느껴졌다. 고기가 들어간 음식들을 잔뜩 시켜놓고 먹었다. 그 상대적인 포만감과 만족감이 미각을 잃게 했다. 그리고 여행자가 많다 보니 술도 마실 수 있고, 오르차에 비해서 자유롭긴 했다. 그리고 노을이 지는 타지마할을 숙소 옥상에서 볼 수 있었다. 그건 타지마할을 보기 전 전야제처럼 생각됐다. 하얀 건물에 노을빛이 비치는 장면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이슬람 건축물 타지마할 뒤 강가에는 힌두교 석상과 사두가 있다.

다음 날이 금요일인 것조차 잊고 있었다. 금요일이 휴관인 것은 알고 있었는데, 요일도 날짜도 잊고 있었던 까닭에 타지마할 방문은 또 다음 날로 미뤄졌다. 타지마할은 이슬람 건축물이어서 금요일 휴관한다. 이슬람에서는 금요일이 일요일처럼 휴일이다. 걸어서 타지마할 동문 쪽으로 갔다. 강가에서 잠시 바람을 맞으며 앉아서 쉬고 있었다. 이슬람 건축물인 타지마할이지만, 강가에서는 작은 힌두교 석상을 두고 사두(요가행자)가 잠들어 있었다. 지나가는 새를 한동안 보고 있었는데, 경찰이 와서 잠든 사두를 깨워서 보냈다. 이슬람과 힌두교가 공존하는 인도에서는 흔한 일이다. 그렇다고 사이가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바라나시에서도 이슬람 지역이 따로 있었는데, 힌두교 사람들은 그곳을 위험지역이라고 말했다. 이슬람 건축물이 지금까지 인도의 상징이 된 것은 종교를 떠나서 건축물 자체, 예술성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최고의 수익을 내는 관광지라는 이유도 있다. 예술작품에서는 평화를 약속이라도 한 듯 건드리지 않는 게 기본 생각이다. 
실프그람 벽화들은 아주 흥미롭다.

아그라는 관광객이 많은 만큼 여행자를 속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자꾸만 말이 바뀌는 릭샤왈라(꾼) 때문에 말을 탔다. 실프그람(Shilpgram·공예마을)에 갔다가 기차역으로 가자고 했다. 물론 실프그람도 문을 닫았다고 했지만, 기차역에 가는 길에 들르기로 했고, 말을 모는 사람은 기다려주기로 했다. 재밌는 벽화를 둘러보면서 정원을 살펴보고 다시 말을 타려고 갔다. 그런데 아저씨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갤러리가 한 군데 더 있는데, 그곳에 가주면 숙소까지 돈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이 말을 믿을 수밖에 없는 건 아저씨 눈빛이었다. 그곳에 손님을 데려가면 수수료를 받나 보다. 물건을 사지 않아도 되니, 구경만 하고 나오라고 했다. 그렇게 하기로 하고, 간 곳은 큰 건물 전체가 상점이었다. 갤러리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좋은 작품들이 많았다. 1000만원이 넘는 가격에 어차피 구경밖에 할 수 없었다. 작은 물건 하나라도 사고 싶었지만, 살 수 없는 고가였다. 이 얘기를 솔직히 아저씨에게 하니, 괜찮다며 오히려 고마워했다. 아저씨는 신이 나서 말을 몰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기차표를 예약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저녁에는 낮에 갔던 타지마할 뒤쪽 강가로 가서 석양과 함께 타지마할을 바라봤다. 높은 벽이 있어도 하얀 타지마할은 잘 보였다. 또다시 노을에 화려해진 타지마할이 빛나고 있었다. 강가는 조용하고 노을에 불타는 타지마할을 보기 좋은 장소다.

이번에는 정말로 타지마할을 들어가는 순간이 왔다. 입구에서 산 비싼 표도 챙겨야 하고, 신발을 넣을 수 있는 주머니와 작은 물도 챙겨야 하고, 사람이 많아서 정신이 없었다. 타지마할에서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한다. 이건 이슬람에서는 기본 규칙이다. 발을 씻고 정갈하게 사원에 들어가야 한다. 사실 타지마할은 사원으로 지어진 것은 아니다. 유명한 일화는 샤 자한 황제가 ‘뭄타즈 마할’을 기리기 위해서 22년 동안 지은 무덤이다.

샤 자한 황제는 이슬람이 인도 지역을 점령했던 무굴제국 때 황제이며, 당시는 아그라가 수도였다. 샤 자한 황제가 전쟁터에 사랑하는 뭄타즈 마할 왕비를 데리고 다녔고, 그때 아이를 낳고 세상을 떠났다. 아그라로 돌아온 황제는 사랑하는 왕비를 잃고 슬픔에 잠겨 있다가 그녀를 위해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묘를 만들어 주겠다고 결심을 했다. 코끼리가 대리석을 나르고, 이슬람 사원 건축가와 예술가를 불러들이고, 다른 나라에서 보석을 사들여서 가장 화려한 무덤을 짓었다.

타지마할을 보는 순간 얼마나 많은 사람과 얼마나 많은 자재가 들여오고 노력과 희생으로 지어졌는지 느껴진다. 하얀 대리석과 보석이 햇빛에 비쳐서 눈이 부시다. 그리고 맨발로 뜨거워진 대리석을 걷는 일은 힘들다. 이 아름다운 문화재에 대한 관리가 아쉽다. 1650년에 완공된 건물이 이 정도로 지켜졌다면, 관리를 잘했다고 해야 할 수도 있다. 타지마할이 아름다운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스스로 기대치를 높이지 않고 순수한 건축물로 본다면, 순백의 빛남이 태양이 아니라 그 안에서 나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여행작가 grimi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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