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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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미의 짜이 한 잔] 소박하고 따뜻한 인도 집밥… "내 인생 최고의 커리"

<17> 점점 다채로워지는 디우에서의 일상
현지인 집을 한 달 동안 빌릴 때 도움을 준 ‘자헤시’라는 친구가 있었다. 나보다 한 살 많은 친구였는데, 그는 두 조카를 끔찍이 사랑하고 정이 많은 인도 사람이다. 하루는 초대를 해줘서 자헤시 집으로 갔다. 자헤시 어머니가 한 상 차려주셨다. 인도 가정식은 그 어느 식당보다 맛있다. 차파티(Chapati)를 직접 밀어서 굽고 계시길래, 배워 보면서 일을 도왔다. 역시 어머니는 차파티 반죽 미는 기술이 능숙하셨다. 힌두교를 믿는 자헤시네는 당연히 채식한다. 특히 자헤시는 달걀도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다. 채소만으로 만든 음식들은 맛있고, 다양했다.

인도식에 기본인 커리는 감자와 채소만 넣은 커리였는데, 나를 위해서 짜지 않게 만들어주셨다.
맵지도 않고, 적당한 간에 심한 향신료 냄새도 안 나는 최고의 커리였다.


소박한 음식이지만, 최고로 맛있는 음식이었다.

어머니에게 ‘내가 먹어본 것 중 최고 커리이며, 아마도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일 것’이라고 말했다. 인사치레로 하는 말이 아니라, 어머니가 해주시는 음식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다. 차파티가 식을까 봐 계속 새로 데워서 따뜻하게 주시는 정성이 고마웠고, 또한 한국에 있는 ‘엄마’가 생각났다.

식사 초대를 받으러 가서 어머니 음식에 감동을 하였다.

인도에서 후식은 역시 ‘짜이’다. 어머니가 끓여주는 짜이도 맛있어서 몇 잔을 더 마셨다. 구자라트지역에서는 짜이를 ‘짜-’라고 부르며, 찻잔 받침에 부어서 마신다. 그 낮은 찻잔 받침에 넘칠락 말락 한 짜를 잘 들고 마셔야 한다. 처음에는 구자라트식 짜이를 몰라서 컵이 없어서 받침에 주는 줄 알았다. 어디를 가나 작고 낮은 찻잔 받침에 짜이를 줬다. 양이 적어서 그런지 서너 잔은 기본으로 마시게 된다.

자헤시의 조카 나두와 하두.

자헤시네 두 조카는 열 살 정도 된 여자아이다. 예쁘게 생긴 아이들 엄마를 본 순간 이유를 알았다. 자헤시 제수씨가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학교 선생님인 그녀는 그다음에도 가끔 같이 만나곤 했다. 자헤시네 가족들과 친해지면서 그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힌두교 사원을 가족들과 같이 가자고 제안했을 때도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그 길이 힘들고 고된 길이 될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신나게 출발했다. 듣기로는 스쿠터로 한 시간이면 간다고 했다.

스쿠터를 타고 두 시간이 넘게 걸려서 간 사원.

사원보다는 그 사원을 가려면 정글을 지나가야 한다는 말에 더욱 신났다. 분명 사자도 있다고 했지만, 사슴과 새, 원숭이 등이 전부였다. 숲 속에는 동물들이 자연스럽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정글에 들어설 때, 입구에서 안내를 해줬다.

이곳은 동물이 사는 곳이기 때문에 동물을 놀라게 하지 말아야 하고, 정해진 길만 지나가야 한다고 했다. 그래도 그 정글을 지나는 길이 좋았고, 산 정상에 올랐을 때의 상쾌함이 좋았다. 

산 정상에 있는 사원에는 사람들의 염원이 담긴 팔찌가 나무에 걸려 있다.

크리슈나 사원은 규모가 컸다. 그리고 작은 마을에 스쿠터를 세워놓고, 산을 올랐다. 정상에 올라서 보는 다른 산들은 내 눈높이에 마주하고 있었다. 

산에 올라가니 다른 산들이 내 눈높이에 있었다.

두 조카, ‘니두’와 ‘하두’는 내가 그리는 그림을 한참 바라봤다. 아이들에게 종이와 펜을 넘겨줬다. 아이들은 신나서 그림을 그렸다. 역시 아이들 그림이 자유롭고 좋다.

니두가 그린 그림.

산 아래는 온천도 있었다. 더웠지만, 온천이라는 말에 발이라도 담가봤다. 따뜻한 물에 산을 올라서 피로한 발을 쉬게 해줄 수 있었다. 6시가 넘어서 디우로 돌아오는 길은 어둡고 힘들 수밖에 없었다. 정글이라고 부르는 숲길은 7∼8㎞를 가야 한다. 불빛 하나 없는 길을 스쿠터 불빛으로 겨우 빠져나왔다.

서툰 스쿠터 운전과 울퉁불퉁한 길, 그리고 가끔 지나가는 반대편 차량 불빛이 힘들게 했다. 그 불빛은 순간 앞이 안 보이게 한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앞을 주시하면서 달렸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길이 끝나고 나서야 마을로 들어섰다. ‘우나’라는 마을은 활기차게 밤거리를 밝히고 있었다. 두 시간이나 걸려서 겨우 도착한 마을이었다. 수제 과자가게에 들러서 아이들에게 선물 한 상자를 손에 들려줬다. 어른들은 짜이 한 잔을 마시면서 잠시 쉬었다. 우나에서는 디우까지 삼십 분 남짓 걸린다. 집에 돌아와서 쓰러질 줄 알았는데,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탄두리 치킨을 먹고서 잠이 들었다.

며칠 후에 또 자헤시네 가족과 여행 계획을 세웠다. 이번에는 자헤시가 차로 가기 때문에 힘들지 않을 거라고 귀띔해줬다. 자헤시네 친척이 사는 집인데, 디우에서 차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마을이다. 친척 집에 가는 이유는 결혼식 때문이었다. 결혼식 음식은 뷔페로 식판에 담아서 바닥에 앉아서 먹으면 된다. 

귀여운 꼬마는 자헤시 친척이다.

역시 힌두교 결혼식이다. 결혼식에 참석하고 나서는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인사를 했다. 여행객이 올 일이 전혀 없는 작은 마을이다.

얇은 슬리퍼를 신고 오래 걸었더니, 신발이 끊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신발을 사러 갔는데, 온 동네가 자헤시 친척 집이었다. 신발가게도 친척이고, 절대 돈을 받을 수 없다면서 선물이라고 했다. 미안해져서 더 사고 싶은 예쁜 신발이 있었지만, 살 수도 없었다. 이 마을에서 유명한 빙수 가게가 있다고 해서 열댓 명이 가서 종류별로 주문했다. 먹을 수 있는 색이라고 전혀 느껴지지 않는 색색이 얼음에 물들어져서 나왔다. 아이들은 맛있다고 먹는데, 그 맛 또한 신기하고 새롭기만 했다.

연주가 시작되자, 누구는 노래를 부르고, 누구는 춤을 추기 시작했다.

친척네 집으로 돌아가서 즉흥 연주를 들었다. 친척 중 한 분이 음악 선생님이시라고 했다. 여기저기서 악기들이 나왔고, 신나게 곡을 연주하고, 누군가는 노래를 부르고, 아이들은 춤을 췄다. 자유롭게 노는 아이들과 함께 모두 다 같이 즐겼다. 저녁까지 먹고 디우로 돌아왔다. 디우에서 일상들이 점점 다양해져 가고 있었다.

여행작가 grimi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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