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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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교육에 올인하는 부모… 死교육비에 노후준비도 막막

연령대별로 본 ‘행복과 불행’⑫ 사교육비에 허리 휘는 가정
맞벌이를 하는 이모(39)씨 부부는 합산 소득이 월 650만원 정도다. 매달 허리띠를 졸라매며 저축하지만 모이는 돈이 많지 않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딸의 교육비 때문이다. 딸의 영어 학원, 피아노 학원, 수영 교습 등에 매달 200만원 가까이 들어간다. 이씨는 “다른 것은 포기해도 자식 교육은 포기할 수 없는 게 부모 마음이 아니겠느냐”며 “여유가 있다면 이것보다 더 수준 높은 교육을 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과도한 사교육, 실버푸어 양산한다

이처럼 높은 교육열로 인한 사교육비에 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의 허리가 휘고 있다. 12일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연간 사교육 시장 규모는 33조원에 육박한다. 엄청난 비용을 수반하는 사교육 시장은 공교육을 파행으로 몰아가는 것을 넘어 과도한 가계지출을 초래해 ‘실버푸어’(가난한 노년층)를 양산하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KDI는 최근 기획재정부 중장기전략위원회와 대통령자문 국민경제자문회의가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교육을 주제로 연 ‘중장기 경제발전전략’ 교육 분야 정책세미나에서 “사교육비 규모가 정부 발표로는 20조원 안팎이지만 실제로는 30조원 이상으로 추정된다”며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를 분석한 결과 연간 총 사교육비가 32조9000억원에 달하고 게속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교육부와 통계청은 지난해 사교육비 총 규모를 약 18조2000억원으로 추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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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지방통계청의 ‘서울지역 청소년 통계’ 따르면 서울 지역 초·중·고 학생 10명 중 7명 이상이 매월 평균 33만5000원을 들여 사교육을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서울 지역 초·중·고 학생의 사교육 참여율은 74.4%에 달했다. 사교육 참여율은 학생들의 나이가 어릴수록 높았다. 지난해 서울 초등학생의 84.3%가 사교육을 받았고 중학생은 73.3%, 고등학생은 61.3%가 사교육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같은 기간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고등학교 37만1000원, 중학교 34만9000원, 초등학교 30만원으로 학년이 높아질수록 늘어나는 반대 양상을 보였다.

대학 입시를 앞둔 고등학생들의 사교육비가 더 비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사교육 비율과 사교육비 통계를 종합해 보면, 일부 부모들은 늘어나는 부담 때문에 아예 사교육을 포기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사교육 문제에 대해 범정부적 대응을 주문했다. KDI 우천식 선임연구위원은 정책세미나에서 “사교육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특별위원회를 설치해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등 사회적, 경제적 문제로 확대해 대응해야 한다”며 “중장기적으로는 우리나라 교육인력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자녀 교육에 올인한 ‘기러기아빠’ 부작용… 극단적 선택도

아이와 엄마가 동반 해외 유학을 떠나면서 홀로 사는 ‘기러기아빠’를 양산하는 현실은 우리나라 교육의 폐해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국내 대기업 부장인 이모(46)씨는 2012년 초등학생 아들을 캐나다로 조기유학을 보냈다. 맞벌이를 하던 아내도 직장을 그만두고 아들과 함께 떠났다. 이씨는 중학생이 된 아들이 현지에서 잘 적응하는 것 같아 다행스러우면서도 노후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오랜 뒷바라지 끝에 기러기 아빠의 삶이 피폐해지거나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 6월 자녀와 아내를 호주로 유학 보낸 한 은행의 부지점장은 20억원을 빼돌리고 잠적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2013년 3월에는 기러기아빠 생활을 하던 50대 치과의사가 번개탄을 피워 자살했다. 10년 동안 혼자 생활해 온 외로움을 이겨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같은 해 11월에도 자식 2명을 아내와 함께 미국으로 유학보낸 50대 남성이 “몸 건강과 정신 건강을 모두 잃었다”는 유서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근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기러기 아빠 3명 중 1명은 우울감을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우울증으로 진단을 받더라도 보호자가 없기 때문에 치료가 어렵다. 이를 방치할 경우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떨어져 있는 가족을 대신해 사람을 자주 만나고 가족들과도 꾸준히 연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이우중 기자 lol@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