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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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없이 위협하는 '휘황찬란'한 조명

푸른 지구 지키는 창조의 길 (17) 새로운 환경오염 ‘빛공해’
밤하늘에 별이 사라지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구에서 별을 볼 수 있는 환경이 파괴되고 있다. ‘인공 빛공해’ 탓이다. 고요한 밤이 되면 만물이 편히 눈을 붙이거나 쉬어야 하지만 빛공해 문제로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일도 늘고 있다. ‘빛 기술’의 발달이 지구에 새로운 환경오염을 야기하게 된 것이다.

◆기술발전과 함께 나타난 새로운 공해

부산 동래구에 사는 김모(35)씨는 요즘 잠을 설치는 날이 잦다. 얼마 전 리모델링 공사를 한 집 옆 모텔에서 김씨의 집과 마주하는 벽에 대형 조명간판을 단 뒤부터다. 오후 5시부터 이른 새벽까지 시시각각 변하는 간판의 빛이 김씨의 집으로 수시로 침범한다. 답답한 마음에 구청에 신고도 해봤지만 “산업지구라 처벌이 안 된다”는 허망한 답변만 돌아왔다. 김씨처럼 ‘빛공해’로 고통을 겪고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빛공해는 인공조명의 부적절한 사용으로 과도한 빛이 조명영역 밖으로 누출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인간의 건강이나 쾌적한 생활을 방해하고 자연환경에도 적잖은 피해를 끼친다. 

11일 환경부에 따르면 전국 시도에 접수된 빛공해 관련 민원은 2012년 2859건에서 2013년 3210건, 2014년 3850건으로 매년 증가추세다. 최근 3년간 1만건에 육박한다. 이 기간 지역별 빛공해 민원은 서울이 3197건(32.2%)으로 가장 많았고, 경기 2442건(24.6%), 경남 936건(9.4%). 강원 803건(8.1%), 광주 765건(7.7%) 등이다. 피해 유형별로는 수면방해 4788건, 농림수산업 활동 피해 4013건, 생활불편 805건 등이다. 

최근 경기도가 한국환경조명학회에 의뢰해 도내 31개 시군의 빛공해 현황을 조사한 결과 주거지역은 평균 40%의 인공조명이 빛 방사 허용기준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빛공해 피해는 늘고 있지만 해결 방안은 아직 미흡한 실정이다. 정부는 2013년 2월에야 ‘인공조명에 의한 빛공해 방지법’(빛공해방지법)을 시행했다. 처벌규정까지 만들어 최고 1000만원의 과태료를 정했지만 실제 처벌한 사례는 거의 없다. 처벌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지자체가 ‘조명환경관리구역’으로 지정해야 하는데 11월 현재 조명환경관리구역을 지정한 지자체는 올해 8월부터 관리구역을 지정한 서울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관리구역은 자연환경보전지역을 1종으로, 농림지역 2종, 주거지역 3종, 상업지역 4종 등으로 구분해 인공조명 허용기준을 다르게 적용한다. 정부는 2018년까지 국토의 절반을 조명환경관리구역으로 지정할 계획이다. 빛공해방지법에는 빛공해가 주변지역에 미치는 환경영향을 평가하기 위해 3년마다 ‘빛공해 환경영향평가’를 하도록 규정했지만 이를 지키고 있는 곳은 17개 광역시도 가운데 8곳에 불과한 실정이다.

빛공해는 불면증, 우울증, 스트레스를 주고 생체리듬을 파괴하고 암 같은 심각한 질병을 일으키기도 한다. 사람이 수면상태에 빠지려면 몸에서 멜라토닌이라는 호르몬이 정상적으로 분비돼야 하는데 이 멜라토닌은 어두운 상태에서 형성된다. 결국 빛공해는 이를 방해해 생체리듬을 파괴해 여러 질병의 원인이 된다. 최근 해외 연구에서는 빛공해로 유방암, 전립선암, 비만, 인지장애 등이 유발될 수 있다는 결과도 나왔다. 특히 야간에 과다한 빛에 노출된 여성들이 유방암 발생비율이 정상 지역의 여성보다 73% 높게 나온다는 연구도 있다. 식물도 키는 자라지만 열매를 거의 맺지 못하고, 꽃들이 계절과 다르게 개화하거나 단풍시기가 지연되고 수명이 짧아지기도 한다. 양서류와 포유류는 번식을 방해받고 조류도 서식지를 떠나는 등 생태계가 파괴되는 ‘자연지각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차량이나 선박, 항공기 역시 빛공해로 시야가 제한돼 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선진국들 빛공해 관리 일찍 시작돼


미국, 영국 등 해외에서는 일찍이 국제조명위원회(CIE) 등이 정한 방침에 따라 빛공해 기준을 정하고 이를 관리하고 있다.

영국은 15년간 천문관련 단체와 농촌 보호협회를 중심으로 빛공해 문제가 제기돼 2005년 ‘청정근린환경법’에 인공조명에 대한 규제가 담겼다. 영국은 지역보다 조명의 사용용도로 기준을 나눴다. 가정의 안전을 위한 조명, 상업적 안전조명, 건강생활과 스포츠시설조명, 가정 장식용조명, 빌딩 외관조명, 레이저쇼 등을 위한 조명 등 목적별로 나눠서 각 용도별로 조명의 세기, 시간, 종류 등을 정하고 있다. 또 기술적인 부분은 CIE와 영국 조명공학회(ILE)의 기준을 따르도록 한다.

미국은 각 주와 도시별로 차이가 있지만 주로 조명환경관리구역을 설정해 관리한다. 지나치게 강한 상업조명이나 도시 미관을 해치는 광고조명, 옥외 조명이 집안으로 들어와 수면 등을 방해하거나 사생활을 침해하는 경우, 운전자나 보행자의 눈을 부시게 하는 반사판까지도 모두 관리한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점등시간, 전등종류, 전등갓 유무 등을 관리하지만 일부는 색채에 대한 규제나 빛을 비추는 각도와 설치 높이를 규정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최근 들어 빛공해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2013년 기준 국내 빛방사허용기준치 초과량은 27%에 이르며 국제기준을 적용하면 47%까지 올라간다. 정부는 빛공해 초과율을 2018년까지 13%대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이는 도심에서도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있는 수준까지 쾌적한 빛환경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2012년 환경부 빛공해 실태 조사에서는 서울이 세계 주요 21개 도시 가운데 가장 빛공해가 심했다. 특히 상가와 복합쇼핑 건물 등은 CIE의 상업지역 기준(25cd/㎡)을 7배 이상 초과했다. 부산 해안가 조명은 교외지역 기준(5cd/㎡)의 7∼20배에 달한 적도 있다.

환경공단 좋은빛정보센터는 빛공해를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빛이 필요 이상으로 넓게 번지지 않도록 전등갓을 씌우거나 광고판의 점멸등 대신 비점멸등으로 교체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며 “주거지역은 성격에 맞는 부드러운 광원을 쓰고 아파트 브랜드명에 대한 인공조명 등도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환경부 관계자는 “정부는 빛공해 관리를 통해 쾌적한 환경마련과 함께 에너지 절감이라는 두 가지 효과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조병욱 기자 brightw@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