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안보강국의 길을 묻다] '핵에는 핵' 다시 고개 드는 한국 핵무장론

결심땐 핵폭탄 제조 가능… 한·미관계 등 감안 실현성은 ‘희박’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우리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 vs “핵무장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다” 지난 6일 북한의 4차 핵실험 감행으로 남한 내 ‘핵무장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핵실험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우리도 자체 핵무장으로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논리다. 북핵 위협이 고조될 때마다 등장한 단골 메뉴다. 2013년 2월 북한의 제3차 핵실험 때도 제기된 바 있다. 당시 핵무장론은 남한에 핵을 배치해 논란을 자초할 필요가 있느냐는 여론이 커지며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북한이 핵을 포기하기는커녕 ‘핵보유국 지위’를 다지기 위해 4차 핵실험까지 하자 그동안의 대북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는 차원에서 핵무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보수진영을 중심으로 다시 흘러나오고 있다.


북한의 4차 핵실험으로 한국에서 핵무장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사진은 1946년 태평양 비키니섬에서의 미국 핵실험 모습과 지난해 9월1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공개된 수소폭탄 ‘차르 봄바’(소비에트 AN-602) 복제품. 차르 봄바의 위력은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3800배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핵무장 “이론상으로는 가능”

일부 보수진영은 현재 미국이 우리나라에 북한의 핵위협에 대응하는 핵우산(확장 억지)을 제공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해 핵무장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핵무장이 가능할까. 기술적 측면에서만 보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미국 워싱턴의 대표적인 핵군축 전문가인 찰스 퍼거슨 미국과학자협회(FAS) 회장이 지난해 5월 공개한 한국 핵무장론 보고서를 참고할 수 있다. ‘퍼거슨 보고서’는 일단 우리나라가 핵무기를 만들기로 결심하면 단기간에 수십개의 핵폭탄을 제조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우리나라가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핵물질, 핵탄두 설계, 운반체계를 이미 확보했거나 손쉽게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도 내다봤다. 특히 핵물질은 이미 가동 중인 원전에서 쓰다 남은 핵연료에서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방식으로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북 경주 월성원자력발전소의 4개 가압중수로(PHWR)에서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준무기급 플루토늄을 추출하고, 한국이 당장 핵무기 제조에 나설 경우 이들 가압중수로에서 5년 이내에 수십개의 핵탄두를 만들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보고서는 우리 군당국이 핵무기를 실어나를 수단으로 나이키 허큘리스 대공 미사일과 탄도·순항미사일인 ‘현무’, 공군 주력 전투기인 F-15K와 KF-16 등 무기체계도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클릭하면 큰 그림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실현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워”

현실적으로 핵무장은 쉽지 않다. 대다수 핵관련 전문가들은 한국이 핵무장에 나설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정부도 “한반도에서 핵무기를 생산, 반입하는 등의 행위에 반대한다”는 일관된 입장이다.

한국은 1975년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한 국제 핵비확산 체제 수호자다. 따라서 우리가 핵을 개발하려면 먼저 NPT 체제에서 탈퇴해야 한다.그러나 외교적 고립과 국제사회의 혹독한 제재를 감수해야 한다. 특히 미국과의 관계는 파국이 예상된다.

한국의 핵무장은 집단적자위권 확보를 넘어 핵보유까지 넘보는 일본에 빌미를 줄 수 있다. 결과적으로 한국과 일본이 경쟁적으로 핵무장에 나선다면 핵무기 비확산의 ‘둑’은 무너지게 된다. 핵무장 도미노 현상이 아시아 전체는 물론 중동으로까지 이어지며 ‘핵확산의 시발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쓸 수도 있다. 일부에서는 이를 감안해 한때 주한미군 기지에 배치됐다가 1992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 이후 철수한 미군의 전술핵 미사일을 다시 들여오는 방안을 제시한다. 하지만 한반도에서 핵을 사용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 도래하면 지난 10일 괌에서 한반도로 출격한 B-52나 또 다른 미군 전략자산인 B-2(스피릿) 스텔스 폭격기, 핵잠수함 등을 이용해 원거리에서도 타격이 가능해 굳이 전술핵을 배치할 필요는 없다는 지적이 우세하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왼쪽)가 11일 오후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실에서 열린 북한 4차 핵실험 관련 긴급 간담회에서 미국 정부의 대응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오른쪽은 나경원 외통위원장.
이재문 기자
◆실행 여부 떠나 ‘외교적 폭탄’ 효과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는 지난 1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한·미동맹은 흔들림이 없고 철갑같이 강력하다”면서 “(한국 핵무장론에 대해서는) 현재의 한·미 공조 시스템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최근 여권에서 제기한 핵무장론에 대한 반대 입장을 우회적으로 표명한 것이다.

리퍼트 대사는 또 “어제(10일) 양국 공군의 호위를 받으면서 B-52 장거리 폭격기가 왔는데 이것만으로도 한·미동맹이 흔들림 없다는 것을 전 세계에 보여줬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B-52가 유례없이 빠르게 한반도에 출격한 것은 북핵 위협에 대한 한국의 핵무장보다는 미국의 핵우산 능력으로 대처가 가능하다는 미국의 입장을 시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최동주 숙명여대 글로벌학부 교수는 “한국의 핵무장론은 실현 가능성을 떠나 주장 자체가 미국을 비롯해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들이 북한 핵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도록 압박하는 ‘외교적 폭탄’(Diplomatic Bomb)으로 작용한다”면서 “우리의 전략적 입지를 강화하는 긍정적 효과도 없지 않다”고 진단했다.

김선영 기자 007@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