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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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마다 모두 아픔 있어… 희망 놓지 않는다면 행복 찾아와”

[당신의 삶 안녕하십니까] 연령대로 본 행복과 불행 / 한국사회 행복 결핍 취재 후기
세계일보는 지난해 1월 한국인 ‘행복지수’ 설문조사, 덴마크·핀란드 현지 르포를 시작으로 우리 국민의 행복 체감도를 세밀하게 그린 ‘당신의 삶 안녕하십니까’ 기획시리즈를 24차례 보도했다. 이 시리즈는 매회 주요 포털사이트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에서 뜨거운 반향을 일으키며 지금 우리 시대가 마주한 아픈 현실에 대해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했다. 1년가량 세대와 계층별로 수많은 사람을 만나 그들의 삶과 고민, 아픔, 바람 등을 청취했던 세계일보 기자들이 27일 한데 모여 취재 여정을 마무리하는 자리를 가졌다.


‘당신의 삶…’ 시리즈 취재에 참여한 기자들이 27일 서울 종로구 세계일보 본사 회의실에 모여 그동안 시리즈를 진행하면서 겪었던 일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남혜정, 조성민, 권구성, 이우중, 하상윤, 이재호, 김승환, 박진영 기자.
이제원 기자
-‘당신의 삶···’ 시리즈가 큰 반향을 일으킨 이유는 뭘까


박진영 기자=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행복지수’가 매우 낮은 국가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물질적인 풍요가 행복의 조건이라 생각하고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지금 와서 보니 그게 틀렸다는 거다. 금수저나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는 이상 미래를 꿈꾸는 것은 사치일 뿐이고, 열심히 노력해도 살림살이가 별로 나아지지 않는 현실에 분통만 터뜨리는 형국이다. 왜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됐는지를 세계일보가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진단한 게 독자들의 공감을 끌어낸 것 같다.

이우중 기자=딱딱한 정책이나 피부에 와닿지 않는 이야기를 최대한 배제하고 세대별로 공통적으로 겪는 한계와 문제점 등을 생생하게 소개한 효과로 보인다. 그래서 많은 독자가 ‘암담한 현실이 내 잘못만은 아니구나’, ‘나만 힘들고 아픈 게 아니었구나’라고 위안을 삼았던 것이다. 취재할 때도 나는 가급적 개입하지 않고 인터뷰 대상자들이 속얘기를 털어 놓고 개운해질 수 있도록 하는 데 신경을 썼다.

남혜정 기자=각 세대와 세대별로 동감하는 이슈를 구석구석 조명한 게 높이 평가 받았다고 생각한다. 이번 시리즈는 ‘N포세대’, ‘88만원세대’ 등 그동안 언론에서 많이 다뤄진 청년뿐만 아니라 다른 세대도 청년 못지않게 가로막은 장벽이 많아 아프다는 메시지를 잘 전달했다고 평가한다.

-취재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경험은.

이재호 기자=시리즈 문을 열었던 ‘행복한 나라를 가다’ 덴마크·핀란드 현지 취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특히 핀란드 헬싱키 시내의 한 서점에서 본 출입문이 인상 깊었다. 키가 크거나 작은 사람, 어린이와 휠체어를 탄 장애인 등을 위해 높이가 다른 손잡이가 세 개나 달려 있었다. 핀란드 사회가 구성원을 어떤 식으로 대하는지 단박에 느낀 장면이었고, 우리나라와 비교해 정말 부러웠다.

이지수 기자=‘외모지상주의에 빠진 20대’를 취재할 때 이 문제는 기사 소재 이전에 내 고민이기도 했다. 손님을 가장해 성형외과에 가 보니 많은 여성이 예뻐지려고 수차례 성형 수술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들을 걱정해야 하는데 ‘나도 해야 하나’하는 생각부터 들더라. 솔직히 보도하고 나서 성형을 할까 말까 한참 고민하다 생긴 대로 잘 사는 것은 복이라고 생각해 성형외과를 멀리했다.(일동 웃음)

-보도 이후 가장 와 닿았던 반응은.

김승환 기자=‘기댈 곳 없는 50대’를 주제로 보도한 다음 한 50대 남성 독자에게서 장문의 메일을 받았다. 부하직원이 동기들 사이에서 자신을 ‘개저씨(개와 아저씨를 합친 신조어)’라 부른다는 걸 알고 괴로웠다는 50대 직장인의 사례를 봤는데 자신도 똑같이 겪었다는 요지의 편지였다. 글 말미에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았다’는 대목을 보니 가슴 한 편이 무척 아렸다.

이지수 기자=‘열정페이 강요받는 20대’ 기사가 나간 뒤 ‘그래도 저는 인턴이라는 기회라도 잡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습니다’ 라는 메일을 받았다. 무급 인턴 문제를 다룬 보도였는데, 열정페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수용해야 하는 20대들의 절절한 사연까지는 담아내지 못해 참 미안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국사회가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근본 이유와 나름의 해법을 제시한다면.

조성민 기자=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기본 토양이 노동인데 내가 만난 사람 대부분 “일을 하면서 행복을 못 느끼고 제대로 쉬지도 못 한다”고 했다. 이러니 살 맛이 나겠나. 개인도 어려서부터 적성에 맞는 일을 찾도록 애써야 하겠지만 정부와 정치권, 재계, 노동계가 힘을 합쳐 ‘괜찮은’ 근로 환경을 만드는 게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이우중 기자=세대와 성별에 상관없이 타인과의 비교나 눈치에 신경쓰느라 불안과 불만족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이 많더라. 어떤 도움도 안 되는 콤플렉스에 사로잡히기보다 긍정적인 사고와 ‘한 번 부딪쳐 보자’는 자세로 심리적 안정감부터 찾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권구성 기자=요즘은 모두가 ‘나는 행복하다’고 말하는 데 너무 인색해 낙관적 사고를 잉태하지 못하는 사회 같다. 행복은 물질적 조건보다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시각과 비전을 품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고 본다.

하상윤 기자=‘한국은 불행한 사회다’라는 인식은 우리 사회나 개인적 차원의 어떤 프레임이지 실체가 아니다. 그래 보일 뿐이지만 대한민국에서 희망이라는 출구가 아예 꽉 막힌 상태는 아니니 지레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좌절하지 않았으면 싶다.

정리=김승환 기자 hwa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