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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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성숙한 삶을 위하여

먹고살기 힘든데 북까지 난동
못난 형제 둔 업보 아닐까
불행은 짓눌리지 않으면 벗어나
조용하고 단호한 태도로
또 한 해의 삶 알차게 시작해야
지나서 하는 말이지만, 나는 명절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10남매의 장남인데다, 전체 집안의 구심점 역할을 해서 명절에는 특히 사람이 들끓었다. 병원 치레 한번 안 하는 강골임에도 명절만 끝나면 한번씩 호되게 앓곤 하는 어머니를 보는 일이 어린 나이에도 마음 아팠다. 대학 진학 이후로 집을 떠나 살면서는, 고향 다녀오는 길의 혼잡함과 길바닥에 쏟아버리는 시간, 찾아오는 사람을 위해 준비한 음식이 쌓여 처치 곤란해지는 것 모두가 안타까웠다.

그나마 모인 사람이 즐겁게 다녀가기라도 하면 다행이다. 호사다마(好事多魔·좋은 일에는 탈이 많음)라고, 사람이 모이다 보면 꼭 사고뭉치 한둘이 있게 마련이다. 평소에는 잘 나타나지도 않다가 불쑥 얼굴을 내미는 것까지는 좋다. 그런데 그들은 언제나 술에 취한 상태였다. 정(情)에 약한 한국사회는 특히 명절 취기에 관대하다. 그래서인지 평소에 당당하게 나서지 못하던 친척들이 취기를 빌미로 털어놓는 이야기는 대부분 지나친 자학이거나 원망이다. 그들은 잘나지 못한 자신의 현실을 인정하고 마주할 용기도 능력도 없다. 명절은 그들에게 한바탕 푸닥거리의 시간일 뿐이다. 그러다보니 집안 분위기가 엉망진창이 되곤 했다.

박철화 문학평론가
젊어서는 그들을 쫓아내지 않는 어른들이 답답했다. 혈기 넘치던 대학생 시절의 어느 해인가는 그 광경을 보다 짐을 싸서 서울로 와버린 적도 있다. 되지 않는 타령을 끝까지 달래며 들어주는 인내력이 감탄스럽기는 했지만, 나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십여 년 전인가 문득 그들을 받아주지 않으면 또 어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비루함을, 좌절과 억눌림을, 원망을, 그나마 혈연이 받아주지 않으면 그들에게는 존재증명의 출구가 없었다. 그때부터 즐거운 명절에 단골처럼 끼어드는 난동이 단순히 불쾌한 돌발사건이 아니라, 그냥 운명처럼 짊어지고 갈 통과의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서인지 이번 명절을 앞두고 핵실험과 함께 미사일을 쏘아올린 북한 정권의 입장을 나는 가늠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잘사는 형제 옆에서 자꾸 움츠러들며 억눌린, 그 비뚤어진 심정을 다스릴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엇나가는 방식의 존재증명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 2002년 월드컵 4강 경기 당일의 도발부터 시작해서 북한은 잘난 형제의 명절이면 언제든 초를 치고 훼방을 놓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불청객이 됐다. 버릴 수도, 그렇다고 오냐오냐 받아줄 수도 없는 난감한 불쾌함이 어느덧 우리 명절의 운명으로 다가온 것이다.

어쩔 것인가. 그렇다고 우리의 삶이 휘둘리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다. 축제의 일상은 지속돼야 한다. 개망나니 난동에도 우리는 명절을 즐기고, 그들의 자해 공갈 위협에 짓눌리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못난 형제를 둔 우리의 의무이며, 삶의 방식이어야 한다. 비뚤어지고 엇나가기만 하는 못난 형제의 처신은 측은함과 안타까움을 넘어 짜증나는 일이다. 문제는 그들을 외면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내버려둘수록 더 큰 문제아가 돼 얼굴을 내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속에서도 우리의 일상을 충만한 시간이 되도록 즐기고 아끼는 일, 그들로 하여금 다른 행복한 삶의 가능성이 있다는 걸 꾸준히 보여주는 일이야말로 유일한 선택일 것이다.

이번 설을 쇠고 올라오자마자 나는 북한산에 올랐다. 북한산성을 지나 원효봉, 의사봉, 노적봉 등 바위산의 봉우리를 보면서 자연 속에서 명절 스트레스를 풀었다. 산에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다음 날 찾은 미술관도 마찬가지였다. 붐비는 와중에도 조용히 그림을 보는 시민들은 핵과 미사일의 위협에 둔감한 게 아니라 그럼에도 자기의 삶을 가꾸는 존재로 보였다. 불행은 짓눌리지만 않으면 다 지나간다. 경제는 어렵고, 정치는 난리고, 거기다 북한까지 나서서 난동을 저지르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또 한 해의 삶을 조용히 단호하게 시작해야 한다. 그게 성숙한 삶이다.

박철화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