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소독·건조 분리, 그런 거 잘 몰라요’… 의료세탁물 관리 엉망

병원은 비용절감만 신경… 당국선 실태 파악도 못해
지난해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확산과 C형 간염 집단감염 등이 잇따르면서 감염방지 체계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가운데 상당수 병·의원의 의료세탁물 위생관리가 허술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 감독해야 할 보건당국과 지방자치단체는 실태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책임을 떠넘기거나 헐거운 규정 탓만 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규정 나몰라라 하는 작업장

최근 찾아간 경기도 A의료세탁업체의 작업장은 바닥 곳곳에 세제와 오염물이 엉겨 붙어 있고 군데군데 고인 흙탕물이 눈에 띄었다.

이 같은 바닥에 환자복과 침대시트로 보이는 세탁물이 떨어져 있거나 끌려 운반되기도 했다. 이 업체는 서울의 한 대형병원 세탁물 처리를 맡고 있다.

14일 보건복지부 ‘의료기관세탁물 관리규칙’에 따르면 의료기관 세탁업체는 세탁물의 재오염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작업장을 청결하게 유지하고 ‘오염작업 구역(세탁·소독 등)’과 ‘청결작업 구역(건조·다림질 등)’을 분리해 운영하도록 돼 있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 의료세탁물 처리를 맡고 있는 경기도의 한 세탁업체 작업장에 세탁물이 수북이 쌓여 있고(위 사진) 세탁을 마친 세탁물들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하지만 이 업체는 세탁작업의 시작과 마무리를 모두 한 공간에서 처리했다. 저온세탁용 세제도 발견돼 살균작업이 제대로 이뤄지는지 의문스러웠다.

고온세탁용 세제는 저온세탁용에 비해 가격이 두 배가량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순천향대병원 조현 교수(가정의학과)는 “수술실에서 나온 세탁물은 미생물과 오염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고온에서)완전 멸균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의료세탁물 업계에서는 비용부담 탓에 제대로 고온세탁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부분 병원이 비용 절감에만 골몰하다보니 의료세탁업체 선정 시 최저가 입찰 방식을 선호한다”며 “세탁업체들은 값싼 세제를 쓰거나 고온처리 시간을 줄이는 방법 등으로 살 길을 찾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고 귀띔했다.

A사 관계자는 “작업장이 구분돼 있으며, 세제는 관련 규정이 없어 무엇을 쓰든 상관없다”고 반박했다.

이 업체와 계약한 병원 측은 “세탁물에서 오염물질이 발견된 사례가 없다”며 “공장도 점검을 하는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팔짱만 낀 감독 당국

의료세탁물 위생관리에 대한 지도, 점검 의무는 해당 병원을 관할하는 각 보건소, 즉 시장·군수·구청장에게 있다.

그러나 대부분 보건소는 병원이 보고하는 세탁물 처리량 정도만 파악할 뿐 실질적인 위생관리에는 손을 놓고 있다.

서울 자치구 보건소 관계자는 “세탁업체들이 타 지역에 있기 때문에 일일이 확인하기가 힘들다”며 “규정이 현실과 좀 동떨어져 있다”고 답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보건당국은 ‘법타령’만 늘어 놓으며 소관 사항이 아님을 강조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료세탁물은 법적으로 보건소 관리 영역”이라며 “국정감사 등 외부의 요구가 있지 않은 이상 실태나 통계를 취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대 오명돈 교수(감염내과)는 “의료세탁물 관리·감독은 감염 대응의 기본”이라며 “기초단체장 관할로 둘 것이 아니라 광역단체장과 보건당국도 역할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글·사진=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