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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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청년수당’은 기회인가

지금이야 기자로 직장생활을 하고 있지만, 취업을 못하고 세월만 보내던 시간이 있었다. 일반적으로는 ‘취업준비생’, 속된 말로 ‘백수’라고 불리던 시절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절은 날마다 두 가지 감정과 싸우던 나날이었다. 첫 번째 감정은 ‘불안감’이다. 이미 대학은 졸업해서 특별히 갈 곳도 없으니 남는 시간에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뒤처져 영원히 도태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견뎌낼 수 없다. 학원을 다녀 스펙 1점이라도 올려야 하고, 같은 고민을 하는 취업준비생들을 만나 정보교류라도 해야 한다. 

서필웅 사회2부 기자
그렇지만 날마다 그렇게 무엇인가를 하면서 보낼 수는 없다. 때때로 엄습하는 두 번째 감정 때문이다. 이 감정의 정체는 ‘죄책감’ 또는 ‘미안함’이다. 이미 성인이 된 지 오래, 언제까지 부모님에게 신세를 질 수는 없다. 다른 친구들처럼 월급받아 매달 번듯하게 용돈을 드리지는 못해도, 하다못해 밥값, 차비 정도는 벌어서 쓰고 싶다. 그것만이 중노년의 나이에도 쉬지 못하고 자식을 부양하기 위해 일터로 나가시는 부모님에 대한 마음의 짐을 더는 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두 가지 감정 속에서 매번 길을 잃었던 기억이 난다.

지난해 10월 성남시가 청년배당 지급을 결정했을 때, 그리고 뒤이어 서울시가 청년활동지원 사업을 발표했을 때 ‘정책을 만든 사람 중 놀아 본 사람이 있는 것임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희망 없이 조금씩 침잠해 들어가는 청년들의 삶과 그 속에서 익숙해진 무기력을 지적하는 모습에서 그들의 삶에 대한 이해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성남시의 청년배당은 성남시에 거주하는 청년을 대상으로, 서울시의 청년활동지원은 저소득 미취업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만 다를 뿐 두 정책 모두 결국 이야기하는 것은 한가지다. 더 이상 불안감, 죄책감과 싸우다 미래에 대한 방향을 잃지 말라는 것. “세상에 대한 경험을 넓혀 주기 위한 방법이 청년수당”이라는 설명처럼 사회가 작은 도움이나마 줄 테니 더 이상 방황하지 말고 꿈을 위해, 미래를 위해 계속 전진해 보라는 뜻일 것이다. 성남시의 청년배당과 서울시의 청년활동지원 정책이 처음 발표되고 벌써 6개월여가 지났다. 그 사이 성남시는 청년배당 정책을 시행했고, 그 과정에서 작은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청년들에게는 그 크지 않은 지원이 큰 힘이 되기도 한다.

정책 발표 후 계속된 포퓰리즘 지적에 대해 박원순 서울시장은 “청년수당은 취업의 문에 오르지 못하는 수십만명의 청년들에게 사다리를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라고 항변한 적이 있다. 사실 두 가지 상반된 감정과 싸우다 결국 무기력이라는 늪속으로 가라앉던 그 시절, 우리에겐 정말 그런 게 필요했다. 늪이 아니라 두 다리를 딛고 단단히 설 수 있는 마른 땅으로 갈 수 있는 작은 사다리가 말이다. 지금 이 시간, 여전히 방황하고 있는 청년들이 그 사다리를 밟고 올라가 다시 미래를 위한 길을 걸을 수 있도록 한때 같은 백수였던 기자도 두 손을 모아 응원한다.

서필웅 사회2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