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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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약진 후 기고만장하던 국민의당, 자숙모드?

박지원 ‘국회의장 선출 발언’ 등 눈총
정치권 쥐락펴락 시도… 여론 비난 받아
박 “모든 가능성 열어두자는 얘기” 진화
20대 총선 이후 거침없이 질주하던 국민의당이 여론의 눈총 앞에 ‘자숙모드’로 돌변했다. 국민의당 지도부는 최근까지 각종 현안과 관련해 정부·여당과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강도 높은 ‘시위성 발언’을 쏟아냈다. 구조조정·양적완화 같은 경제 정책은 물론 국회 원구성과 연립정부론 등 민감한 정치 이슈까지 제3당의 존재감을 강하게 과시해 왔다.

그랬던 국민의당이 지난 주말부터 소속 의원들에게 민감한 정치 이슈에 대해 발언을 자제해 달라고 함구령을 내리더니 의원들에게 정책 공부에 집중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지난 2주간 정국을 쥐락펴락할 것처럼 기세등등했던 것과 비교하면 갑작스레 꼬리를 내린 형국이다.

1일 국민의당에 따르면 박지원 원내대표 내정자는 소속 의원들에게 대연정론과 관련한 발언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박 내정자는 새누리당에 국회의장을 줄 수 있다는 자신의 발언 논란에 대해서도 “어떤 경우에도 흥정으로 국회의장을 선출하진 않겠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자는 원칙을 말한 것”이라고 한발 물러섰다. 박 내정자는 3일 초선 23명이 참여하는 공부모임을 발족시켜 6월부터 매일 아침 의정활동과 관련한 학습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런 태도 변화는 최근 국민의당 행보에 대한 여론의 비판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안철수 상임공동대표는 지난달 21일 유일호 경제부총리에 대해 “이름을 말해야 겨우 기억이 날 정도”라고 폄하하더니, 같은달 26일 당선자 워크숍에선 “박 대통령은 양적완화가 무엇인지도 모를 것”이라고 혹평했다. 안 대표 발언에 대해선 당 워크숍이라고 하지만 너무 기고만장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천정배 공동대표도 최근 주한 일본대사를 만나서는 지난해 말 체결된 한·일 양국 간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원천 무효화시켜야 한다”고 말해 양국 외교계를 긴장시켰다.

박 내정자는 자신이 정국의 ‘키’를 쥐고 있는 것처럼 고압적으로 행세했다. 박 내정자는 지난달 28일 당 일각에서 새누리당과의 대연정론이 제기되자 “우리 정체성을 인정하고 오면 할 수 있다”고 조건부로 가능성을 시사했다. 앞서 그는 “박 대통령이 실정을 인정하면 국회의장직을 여당에 줄 수 있다”고 말했고, 국회의장직에 관심을 보이는 더민주의 한 중진에겐 “당신은 안 돼. 당신은 친노 아니냐”고 무안을 주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인 더민주 김홍걸 국민통합위원장은 “삼권분립의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일”이라고 비판했고, 새누리당도 “실정을 인정하라니 어처구니없다”고 반발했다.

국민의당의 이런 언행들은 제3당으로서 향후 국회 운영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표출한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하지만 13대 국회의 신민주공화당 원내총무를 지낸 김용채 전 정무1장관은 이날 통화에서 “국민이 국민의당에 38석을 준 것은 으스대라는 의미가 아닐 것”이라며 “겸손하고 겸허한 자세로 새누리당과 더민주를 오가며 설득하고 타협해 정치가 올바른 궤도에 오르도록 하는 것이 국민의당의 역할”이라고 충고했다. 1987년 이후 통일국민당과 자유민주연합, 자유선진당, 창조한국당 등이 제3당으로 등장했다가 확실한 정책비전과 수권능력을 보여주지 못한 채 소멸했던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김동진 기자 bluewin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