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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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북핵 대처 전쟁억지력이 우선

북 추가 핵실험 한반도 긴장
대만 핵무장 ‘나비효과’ 우려
미국이 북한 핵제거 나서면
전쟁 발발 경고하는 중국
미, 북과 평화협정 나설 수도
“우리의 소원은 통일/꿈에도 소원은 통일/(중략)/통일이여 어서 오라 통일이여 오라.”

과거 남북한 단일팀이 함께 불렀던 한민족의 노래 ‘우리의 소원’을 못 들은 지도 오래됐다. 북한의 추가 핵실험에 한반도 긴장이 장기화돼 평화올림픽을 표방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서도 이 곡을 듣지 못할까 걱정된다.

신동주 베이징 특파원
한 걸음 더 나아가 사실상 핵 보유국인 북한과 통일은 가능한 것인지도 궁금해진다. 한국이 북한 핵무기를 갖게 되면 강대국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라는 가담항설(街談巷說)도 들린다. 이런 상황은 김진명의 장편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나 나올 법한 상상일 뿐이다. 소설은 남북한이 국제사회의 감시를 따돌리고 공동으로 핵 개발에 성공한다는 얼개로 돼 있다.

북한 핵은 대규모 살상 용도 외에는 별 소용이 없는 살인병기다. 1950년 6·25전쟁 당시 북한은 한국군은 한 대도 보유하고 있지 않던 신무기인 탱크(전차)를 앞세워 남침 사흘 만에 서울에 입성했다. 전차와 비교할 수 없는 게 지금의 북한 핵무기다. 더욱이 5차 핵실험과 그 이후의 추가 핵실험을 통해 북한의 핵무기 소형화·경량화가 완성되면 한국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핵무장한 북한은 동북아에 가공할 만한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를 일으킬 수 있다. 진찬룽(金燦榮) 중국 인민대 국제관계학원 부원장은 “북한 핵이 동북아 핵 연쇄 효과를 일으켜 대만도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다”면서 “핵무기를 보유한 대만은 영원히 중국 대륙에서 분리되기 때문에 대륙은 대만을 무력통일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남북한과 양안(중국과 대만)을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핵무기를 둘러싼 역내 갈등이 전쟁을 부를 수 있다는 위기감은 공유한다. 중국인들은 미국이 북한 핵 제거에 나서면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여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최근 미국이 북한을 파괴할 능력이 있지만 한국이 피해를 보기 때문에 인내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북한의 행보를 보면 평화적인 남북통일은 불가능해 보인다. 노무현정부 시절 2005년 6자회담에서 도출된 북핵 9·19공동성명은 북한이 ‘핵무기·핵계획 포기’를 공약한 성과물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그 이듬해 1차 핵실험을 강행하며 6자회담 관련국들을 조롱했다. 잇따른 핵 도발을 강행하며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의 핵심인 미국, 중국, 러시아를 농락하는 행태를 보였다.

그러자 중국은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을 병행 논의하자는 카드를 꺼내 들고 미국을 움직이려 하고 있다. 오랫동안 6자회담을 이끌어온 중국은 북한이 원하는 평화협정 체결 카드를 통해 6자회담을 복원하고 이를 통해 북핵 협상의 주도권을 회복하고 싶어 한다. 중국이 비핵화·평화협정 병행론을 제기하고 나선 이유다. 비핵화에 관심없는 북한도 평화협정 논의는 반긴다. 과거 북한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중국을 방문해 “비핵화 협상과 평화체제 협상을 병행한다면 6자회담에 복귀할 수 있다”는 의사를 전달했고 북한 외무성은 2010년 1월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평화협정 협상을 6자회담 복귀 조건으로 공식화했다.

하지만 1997년 12월∼1999년 8월까지 이어졌던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를 위한 4자회담(남·북한, 미국, 중국)이 분명히 보여줬듯이, 평화협정 논의를 통해 비핵화를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은 ‘희망 사항(wishful thinking)’에 불과하다. 다행히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우선해야 한다는 한국의 입장에 동조하고 있지만 미국의 국익이 항상 우리 국익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과 중국의 체스판에서 한국이 소외될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다.

맹자는 ‘국필자벌이후인벌지(國必自伐而後人伐之)’라는 경계의 말을 남겼다. 한 나라의 멸망을 보면 먼저 스스로 망할 원인을 제공하고 나중에 남에게 멸망당한다는 뜻이다. 김일성 세습정권이 손자 통치로 내려오면서 중국의 대북 영향력도 예전같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이 할 일은 국론을 모아 자주국방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다. 전쟁 억지력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 대북 화해정책은 낭만적인 환상이자 재분열의 서곡일 뿐이다.

신동주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