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설왕설래] 골프 해금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골프광이다. 2014년 미군의 IS 공습 몇 시간 뒤에도 골프장을 찾았을 정도다. 그해 54번 골프를 쳤다고 한다. 최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 골프를 가르쳐 주겠다고도 했다. 미국 대통령 대부분은 골프를 즐겼다. 최소한의 휴식을 위해서다. 그런 대통령에 미국 국민은 친근감을 느낀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에게 골프는 소통수단이기도 하다. 골프 동반자는 참모 외에 야당 인사도 많다. 골프는 정책 협조를 구하는 대야 설득 자리다. 그런 만큼 공직자의 골프도 거부감을 주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선 대통령 스타일에 따라 공직자 골프가 금지되기도, 풀리기도 했다. 금지령 원조는 김영삼(YS) 전 대통령이다. YS가 3당 합당의 단초를 마련한 계기는 김종필 공화당 총재와의 골프 회동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1993년 청와대에 입성하면서 변심했다. “골프를 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청와대 안 골프 연습장도 없앴다. 당시 호화 스포츠로 인식된 골프를 막아 공직기강을 잡겠다는 의도였다. 김대중·노무현정부 땐 공무원 골프가 금기시되진 않았다.

이명박(MB) 전 대통령은 골프를 잘했다. 2007년 대선 전 싱글도 기록했다. 동반자들로부터 기념패를 받았는데 해프닝이 있었다. 싱글(SINGLE)의 영어 철자가 신길(SINGIL)로 잘못 써졌다. ‘새로운 길’이라는 해석이 뒤따르자 MB는 좋아했다. 그랬던 MB가 청와대 입성 후 “골프는 비용이 너무 비싸고 시간이 많이 걸려 운동이 제대로 안 된다”고 했다. 관가에 골프 금지령이 되살아났다.

박근혜정부 출범 초인 2013년 3월 북한의 도발 위협이 고조됐는데도 현역 장성들이 골프를 쳤다. 박근혜 대통령은 “안보가 위중한 시기”라고 질책했다. 그해 7월 청와대 수석들의 골프 건의에 대해선 “바쁘셔서 그럴 시간이 있겠어요”라고 되물었다. 골프 금지령이 굳어졌다. 그러다 2년여가 지난 지난달 26일 박 대통령은 언론과의 만남에서 “좀 자유롭게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흘 뒤인 그제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주요 경제단체 수장들과 내수 살리기를 위한 골프 회동을 가졌다. 골프 금지가 풀린 셈이다. 해금이 얼마나 갈지, 효과는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오바마가 야당과 적극 소통하게 된 건 2010년 집권 1기 때 중간선거에서 뼈아픈 패배를 겪고 나서다. 그 덕분인듯 임기말인데도 마이티 덕(mighty duck), 즉 강한 오리라는 별칭을 얻었다. 지지율 50%의 고공비행을 하며 레임덕을 잊어서다. 박 대통령도 야당과 소통하는 묘안을 찾았으면 한다.

허범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