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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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근로계약서 요구하면 다른 알바 뽑는대요"

청소년 근로자 53%만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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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 배달업체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A군(19)은 일을 그만두며 밀린 월급 두 달치를 받는 데 애를 먹었다. 차일피일 월급 주기를 미루는 업주에게 몇 번이나 찾아가 사정해야 했다. A군은 200만원이 조금 넘는 돈을 네 차례에 걸쳐 나눠 받을 수 있었다. 애초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려 했지만, 고용주 얘기만 믿은 게 화근이었다. A군은 “일 시작할 때 사장이 ‘가족 같은 분위기라 원래 근로계약서를 안 쓴다’고 했다”며 “계약서만 안 쓸 뿐 근로계약조건 다 적용한다더니 결국 새빨간 거짓말이었다”고 말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소년 가운데 절반가량은 A군처럼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4명 중 1명은 부당계약서를 작성하고 있다.

17일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고용노동부 용역을 받아 작성한 ‘청소년 근로실태조사 및 제도 개선방안’에 따르면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소년 500명 가운데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경우는 53.2%에 불과했다. 성별로는 남성은 57.6%가 작성했는데 여성은 48.8%에 그쳤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하더라도 이미 작성된 양식에 단순 서명을 하거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근로계약서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답한 비율은 39.8%에 그쳤다. ‘내용을 모른다’는 15.4%, ‘일부만 이해한다’는 44.8%에 달했다.

근로계약서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다보니 부당계약서를 작성하는 경우도 빈번했다. 일부 고용주들은 일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고 등에 대한 책임을 아르바이트생에게 떠넘기는 내용 등을 계약서에 포함했다. 부당계약서를 작성했다는 응답은 전체의 24.2%였으며, 남성(30.8%)이 여성(17.6%)보다 13%포인트가량 높았다.

지난 2014년 아르바이트 노동조합 회원들이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근로계약서 요구 아르바이트 노동자를 해고한 사용자의 처벌과 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청소년도 5명 중 1명꼴로 집계됐다. 지난해 최저임금인 시급 5580원 미만을 받았다고 응답한 청소년은 20.4%였다. 15∼18세 청소년의 경우는 27.7%로 더욱 심각했다.

안전사고에도 무방비로 노출돼 있었다. 아르바이트생 상당수가 조리도구, 튀김기 등을 사용할 때 체계적인 안전교육을 받지 못한 채 일하고 있었다. ‘받지 못했다’는 응답은 32.8%였고, ‘간단한 안내만 받았다’는 답변은 53.6%였다.

정부는 이처럼 사각지대에 놓인 일하는 청소년들의 근로 권익을 위한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고용부는 올해 초 열정페이 근절을 위한 ‘인턴지침’을 발표한 데 이어 지난 10일에는 아르바이트생 권익 보호 대책을 내놨다. 청소년 근로권익센터 상담인력 증원, 상담시간 연장 등의 내용을 담았다. 또 근로계약서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스마트폰을 통해 손쉽게 내려받아 작성하는 전자근로계약서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정부 대책이 실제 아르바이트 현장까지 효력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치킨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B군(17)은 “편의점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많이 해봤지만 근로계약서를 쓴 적은 한 번도 없다”며 “계약서를 쓰자고 하면 다른 사람 뽑겠다고 하는데, 어떤 아르바이트생이 말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세종=안용성 기자 ysah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