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설왕설래] 퇴사 학교

땅딸막한 키에 얼굴은 머리만 크다. 발칙한 제목의 책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더니 TV 방송에 자주 얼굴을 내밀었다. 그런 대학 교수가 어느 날 방송에서 사라졌다. 방송의 인기야 오락가락하는 법이니 그런 줄로만 여겼다. 한 지인으로부터 “그가 교수직을 그만두고 일본에서 그림을 배운다”는 얘기를 전해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김정운 전 명지대 교수의 얘기다.

인생의 절정기에서 왜 갑자기 방향을 틀었을까? 꼬리를 무는 호기심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날로 서점에 가서 그가 일본에서 썼다는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는 책을 샀다. 교수를 때려치우는 과정부터 먼저 찾아 읽었다. 신문사로부터 ‘그리스인 조르바’의 서평을 의뢰받은 김정운은 이 책을 읽고 깊은 고민에 빠진다.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자전적 소설이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이 나이에 ‘그리스인 조르바’를 다시 읽는 게 아니었다. 지난 며칠 동안 난 이 책을 손에서 놓질 못하고 무척 괴로워했다. 이 느닷없는 자유에 대한 망상 때문이다.”

소설 속 조르바는 자유롭다고 우기는 주인공에게 이렇게 쏘아붙인다. “아니요. 당신은 자유롭지 않아요. 당신은 긴 줄 끝에 있어요. 당신은 오고 가고, 그걸 자유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당신은 그 줄을 잘라 버리지 못해요.” 조르바가 주인공에게 던진 질문은 김정운에게로 송곳처럼 꽂혔다. 고심 끝에 만 50세가 되던 2012년 새해 첫날, 조르바의 삶을 선언했다. 대학에 사표를 내고 현해탄을 건넜다.

30대의 용감한 조르바가 또 나왔다. ‘퇴사 학교’를 설립한 장수한씨다. ‘삼성 맨’인 그는 30세가 되던 지난해 직장에 사표를 던졌다. 야근과 주말근무를 밥 먹듯 하던 와중에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일을 하자는 생각에서 내린 결단이었다. 광야의 삶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사업 실패도 겪었고, 매달 들어오던 수입도 끊겼다. 그는 막연한 미래 앞에서 자신과 같은 퇴사자들이 배울 수 있는 롤 모델이 없다는 사실에 착안해 얼마 전 퇴사 학교를 세웠다. 퇴사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한 오프라인 강좌이다. 무조건 퇴사를 권하는 것이 아니라 왜 내가 퇴사해야 하는지,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함께 고민하는 자리이다.

자유에는 두 가지가 있다. ‘∼로부터의 자유’와 ‘∼를 향한 자유’이다. 전자가 새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유라면 후자는 그 새가 자신의 날개로 비상하는 자유이다. 단 한 번뿐인 삶, 당신이 진짜 하고 싶은 것을 향해 날갯짓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아직 새장에 갇힌 새일 뿐이다.

배연국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