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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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기온 상승 1.5℃ 내로 지키자] 툭하면 산림 개발… 생물다양성 보존, 한국은 '역주행'

⑪ 생물 멸종위기 부추기는 무분별한 규제완화
올해 초 세게 과학계에서는 지구의 지질시대가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환경이 급변하면서 현 지질시대인 ‘홀로세’(Holocene)에서 최근 100년을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로 다시 분류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1월 미국·영국·프랑스 등 12개국의 연구자 24명으로 구성된 국제지질학연합(IUGS) 산하 국제연구팀이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새로운 지질연대에 들어섰다는 증거를 발표하면서다. 46억년 지구의 역사는 선캄브리아대,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로 나뉜다. 여기서 신생대는 다시 7개의 세(世, -cene)로 구분된다. 그 마지막이 농경생활이 시작된 1만여년의 홀로세다. 엄청난 양의 온실가스를 내뿜고 화학제품을 생산하며 하루 10종의 생물을 멸종시키는 데 기여한 인간을 과거 자연적인 흐름과 다른 지질연대로 구분해야 한다는 게 이들 연구팀의 주장이다.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지만 이들이 주장하는 생태계의 변화를 지구의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생물다양성 훼손 심각… 현 속도 개발 시 2.5개 지구 필요해

지난 22일은 유엔이 정한 ‘국제 생물다양성의 날’이었다. 생물다양성은 지구상에 살고 있는 생물종의 다양성과 생물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다양성, 생물이 지닌 유전자의 다양성을 일컫는 말이다. 국제 생물다양성의 날은 생물다양성이 사라지는 상황에서 사람들의 인식을 개선하고 생태계를 보존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1993년 열린 유엔 총회에서 처음 제정됐다.

기후변화는 지구 생태계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10년 유엔 생물다양성협약(UNCBD)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변화에 따른 지구온난화로 1970∼2006년 지구 생물종의 31%가 사라졌다. 이는 매년 2만5000∼5만종의 생물이 멸종되고 있다는 의미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는 아열대화로 지역별 생물종 지수가 15% 증가했지만 멸종위기 야생생물 지정도 그만큼 늘었다. 30년 내에 지구 전체 생물종의 25%가 멸종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세계자연기금(WWF)의 ‘지구생명보고서 2014’를 보면 1970∼2010년 포유류와 조류, 파충류, 어류 등 생물 다양성을 나타내는 지구생명지표는 절반 가까이 줄었다. 생물종 가운데 담수생물 지표가 76% 줄었고, 해양생물과 육상생물은 각각 39% 줄어들었다. 지역별로는 열대지방의 손실이 두드러졌고,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남미 지역은 83%나 줄었다. 생물종 감소의 주요 원인으로 인류의 ‘생태발자국’ 증가가 꼽힌다. 생태발자국은 인간의 활동으로 요구되는 전체 생태서비스를 위해 사용되는 지구상의 공간을 계산한 것이다. 이 보고서를 총괄기획한 WWF 리차드 멕레란 생태발자국 국장은 “한국은 세계 31번째로 많은 생태발자국을 남기고 있는데 다른 국가평균에 비해 1.7배나 높은 수치”라며 “한국의 생태발자국을 지구가 감당하기 위해서는 2.5개의 지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생물다양성 훼손하는 무분별한 규제완화… 보호지역 목표비율 달성 요원

국제사회는 생물다양성 감소에 강력한 경고 신호를 보내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개발에 열중하는 모습이다.

환경운동연합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우리나라 산림이 다른 용도로 개발된 면적은 여의도 면적(2.9㎢)의 30배에 이른다. 이 가운데 93%는 도시개발로 훼손됐다. 공장개발로 인한 산지훼손은 여의도 면적의 5.9배, 지자체나 국가기관의 공공시설 또는 관광시설 개발이 여의도의 9.9배, 도로가 3.3배, 골프장이 2.1배에 달한다. 내달 개원할 20대 국회에서는 국립공원 등 보호지역에 개발특례를 허용하는 산악관광특구법, 해양관광특구법이 다시 추진될 예정이다. 정부는 그린벨트 등 보호지역에 공장이나 주택을 지을 수 있는 규제완화도 계속 추진 중이다.
생태서식지로 분류돼 개발이 제한되는 ‘비오톱’의 등급조정도 남발되고 있다. 비오톱은 특정한 식물과 동물이 하나의 생활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동식물서식지로 1등급의 경우 모든 개발이 불가능하며 2∼5등급도 제약이 많아 건설업계에서는 그린벨트보다 개발이 더 어려운 곳으로 통한다. 최근 4년간 서울시는 비오톱 등급조정 신청 10건 중 약 8건을 허용했다. 생태계 보호를 위해 지정한 지역을 마구잡이 식으로 풀어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70년 넘게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주민들의 쉼터로 이용됐던 궁동산 ‘개나리언덕’이 최근 고급 빌라를 짓기 위해 파헤쳐지면서 벌건 흙이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자료사진
‘2012∼2015년 서울시 비오톱 등급조정 현황’ 자료에 따르면 등급조정 신청 561건 가운데 79인 445건의 등급이 하향 조정됐다. 등급 조정이 반려된 것은 116건(21%)에 불과했다. 
서울 자치구별 비오톱 등급조정 승인건수를 살펴보면 서대문구가 신청 83건 가운데 78건의 등급을 낮춰 줘 승인율 94를 기록했다. 반면 종로구는 65건의 신청 중 24건만 변경해 승인율이 37였다. 용산·중랑·동대문·양천·마포·중구의 경우 4년간 등급조정 신청은 1∼29건에 그쳤지만 신청건 모두 등급이 하향 조정됐다.

이러다 보니 우리나라 전체 면적에서 보호지역이 차지하는 비율은 육지의 10.1%, 해양은 1.2% 수준으로 OECD 평균인 16.4%에 못 미친다.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은 25일 “현재 지구가 겪고 있는 가장 심각한 환경문제는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고갈”이라며 “과학적 설명이 없어도 누구나 체감하는 기후변화에 비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생물다양성 고갈은 오히려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병욱 기자 brightw@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