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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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 체질이라던 아들이 공군에서 숨져…부모 탄원

지난 12일 스스로 목숨 끊은 이등병 부모 "간부 폭언·암기 강요가 원인" 주장
공군 "국과수 부검결과와 간부·병사 추가조사 통해 사건 경위 규명"
"나의 사랑, 나의 조국, 젊음과 열정을 하늘에 바치겠습니다. 필승!"

올해 2월 교대를 졸업한 A(23)이병은 같은 달 15일 공군에 자원입대했다.

A 이병의 어머니는 입대를 20여일 앞두고 "엄마 나 군대가"라고 말한 아들의 목소리를 잊지 못한다.

아들은 고등학생 시절 비행기 조종사가 되는 것을 꿈꾸곤 해 공군에 지원했다.

아들을 군에 보내는 모든 부모의 마음처럼 A 이병의 부모도 걱정이 앞섰지만,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휴가 나온 아들은 "훈련소의 생활이 좋다고 이럴 줄 알았으면 사관학교 갈 걸 그랬다"고 말해 조금은 안심하던 터였다.

A 이병은 훈련소에서 작성한 '나의 각오'에 "나의 사랑, 나의 조국, 젊음과 열정을 조국에 바치겠다"는 내용의 글을 올리며 공군에 애정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랬던 아들이 자대배치 17일 만에 싸늘한 주검이 돼 돌아왔다.

지난 12일 오전 9시 5분 공군 제1전투비행단 장병 생활관 화장실에서 A 이병은 목매 숨진 채 발견됐다.

숨진 A 이병의 소지품에서는 "15∼16일 전화번호부 시험 본다"는 선임병의 글이 적힌 30쪽 분량의 노란색 책자로 된 군 전화번호부와 업무지침이 발견됐다.

공군은 사건 당일 아침 점호 시 A 이병이 보이지 않았으나 '사무실에 일찍 출근한 것'이라고 판단해 신병인 A 이병이 사라진 사실을 알지 못했다.

뒤늦게 동료 병사의 보고를 받고 찾아 나서 화장실에서 숨져 있는 A 이병을 발견했다.

A 이병의 부모는 언론사 등에 보낸 탄원서에서 아들이 자대배치 후 휴가 나와 "간부 때문에 힘들다"고 수차례 말했다고 주장했다.

A 이병이 상황실 근무자로 배치된 후 전화 응대에 미숙하다는 이유로 간부에게 지적을 받아왔다는 말을 들었다고 부모는 전했다.

A 이병은 친구들과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통해서도 "선임들은 다 좋은데 간부들이 좀 힘들다"며 "점점 맨탈이 부처가 되어가고 있어"라고 말한 것으로 부모는 주장했다.

A 이병의 아버지는 "아들이 극도의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견딜 수 없는 인격적 모멸감과 언어폭력을 단기간에 지속적으로 받아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며 "그런 아들에게 저는 군을 믿고, 참고 잘 지내라고 한 무지하고 자격 없는 아버지가 되었다"고 말했다.

A 이병의 부모는 ▲ 전화 응대에 대한 심한 스트레스 압박감 ▲ 간부들의 인격 모멸감을 줄 수 있는 언어 폭행 ▲ 다소 과중한 분량의 암기사항으로 인한 정신적인 학대 ▲ 합리적인 신병관리 체계의 부실 등이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주장했다.

군 수사당국에는 언어 폭행과 가혹 행위가 의심되는 만큼 관제상황실 간부들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공군 제1전투비행단 관계자는 "간부와 병사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인데 현재까지 폭언에 대한 진술이 나온 바 없다"며 "암기를 지시한 병사도 A 이병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한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고 말했다.

또 "동료 병사들 말로는 A 이병이 평소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사실이 있으나 스트레스의 원인이 암기나 폭언 때문인지는 추가 수사를 진행해봐야 안다"고 밝혔다.

공군은 A 이병 국과수 부검결과 추가 조사를 토대로 사건 경위를 규명할 예정이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