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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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눈] 감동 없는 ‘제3지대론’

여야, 민심 외면한 대권 야합… 낡은 연대카드 또 꺼내
여당과 제1야당이 모두 내년 대선을 관리할 지도부를 주류 일색으로 꾸렸다.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표의 복심으로 통하는 이정현 대표와 친박(친박근혜)계 최고위원들이 당 권력을 장악했다. 더불어민주당도 친문(친문재인)계 지원을 받은 추미애 대표와 친문계 최고위원들이 주도권을 쥐었다.

친박, 친문 진영은 공히 자파 지도부를 활용해 내년 대권을 거머쥐려는 꿈에 부풀어 있는 듯하다. 그러나 양 진영의 희망과 달리, 당내 반대파의 반응은 싸늘하다. 새누리당 비박(비박근혜)계에선 “지도부가 특정 계파 일색이 돼 일방통행할 우려가 많기 때문에 당 안에서 차기 정권을 창출할 동력을 생산하기가 어렵다”고 비판한다. 비문(비문재인) 측도 “친문 지도부로는 당의 외연을 넓히거나 민심을 수용하기가 어렵다”고 지적한다.

남상훈 정치부 차장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야 안팎에선 당 바깥으로 나가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자는 ‘제3지대론’이 부상하고 있다. ‘계산적인 이합집산’으로 비판받은 낡은 선거연대 카드를 다시 꺼내든 셈이다.

새누리당 비박계가 먼저 움직이고 있다. ‘친이(친이명박)’ 좌장 격인 이재오 전 의원이 주축이 된 늘푸른당은 범여권 세력을 끌어모으는 등 내년 1월 창당을 목표로 준비 작업에 돌입했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도 지난 5월 출범한 사단법인 ‘새한국의 비전’을 통해 여야 중도 세력을 규합하는‘빅텐트(포괄정당)론’을 주창하고 있다. 하지만 비박 중도 신당은 참여 인사들을 한데 묶을 정치적 지향점이 뚜렷하지 않은 데다 구심점 역할을 할 대선주자도 없어 파괴력이 약하다.

심지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대선 후보로 영입하려는 주류 친박계도 이런 기류에 편승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친박 핵심인 김태흠 의원은 “반 총장이 외부에서 세력을 만든 뒤 우리와 합류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당 밖에서 반 총장을 유력 대권 후보로 성장시켜 그를 중심으로 여권이 뭉치는 ‘반기문 빅텐트론’을 제기한 것이다. 반 총장의 자질과 도덕성에 흠집을 내지 않는 ‘대권 플랜’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반 총장이 경선을 피하기 위해 친박계의 지원을 받아 외부에서 대권을 준비하는 것은 ‘꼼수’란 비판을 받는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

야권에선 정계복귀 초읽기에 들어간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등을 포함한 제3지대론이 나온다. 제3당인 국민의당은 친박과 친문을 제외한 플랫폼 정당 역할을 내세우면서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제3지대론에 관심이 있다.

야권발 제3지대론 역시 한계가 있다. 야권의 최대 지지기반인 호남의 민심이 정권 창출을 위해 분열보다는 통합을 원할 가능성이 높아 내년 대선이 다가올 수록 제3지대론이 수그러들 것이란 관측이다.

제3지대론의 실현 가능성을 따지기에 앞서 명분 없는 구태 정치의 재연이란 지적이 많다. 제3지대론자들은 중도실용주의나 지역구도 극복 등을 연대의 명분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그 지향점은 내년 대선 승리를 위한 이합집산, 합종연횡, 세력재편일 뿐이어서 국민적 공감을 얻기가 어렵다. 제3지대론이 단순한 지역기반의 복원으로 비치거나 지지율 높은 후보를 매개로 연대하는 양상으로 가고 있어서다.

20대 국회 협치를 주창한 여야가 당내 계파 갈등조차 해결하지 못하면서 대권을 위한 퇴행적 연대만을 좇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민심을 반영한 시대정신을 담아내려는 치열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이쯤 되면 ‘철 지난 낡은 옷을 버리지 못하고 곰팡이만 피게 하는 꼴’이 아닌가 싶다.

남상훈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