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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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기울어진 운동장

갑을, 금·흙수저, 헬조선 등등. 우리 사회의 양극화와 불평등을 꼬집는 말이다. 아무리 ‘노오력’해도 격차를 줄일 수 없다는 절망, 자조가 담겨 있다. 장하성 고려대 교수는 지난 2월 강연에서 “고용을 4% 담당하는 100대 기업이 매출액은 29%, 이익은 60%를 차지하는 것이 한국 경제의 기울어진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이 이렇게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도록 방치한 책임은 정치권에 있다”고 했다. 보수의 반성과 개혁을 외치는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은 경제정의를 강조한다. “경제정의는 재벌이 지배하는 한국경제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바꿔주는 것”이라고 했다.

“보수 세력은 뻥 축구를 해도 쉽게 골을 넣는다.”(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 ‘기울어진 운동장’ 이론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던진 화두다. 이후 정치권에서 진보가 주로 내세우는 논리가 됐다. 지역·세대별 유권자 분포나 언론 환경 등 정치지형이 보수에게 절대 유리하다는 것이다. 2007년, 2012년 대선에서 야당이 연패하자 기울어진 운동장론은 통설이 되다시피 했다. 외부 탓만 하는 패배주의가 번졌다. 지난해 3월 새정치민주연합 민주정책연구원은 “기울어진 운동장은 없다”고 비판했다. 대중 요구를 흡수하는 리더십 부재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여당이 4·13 총선에서 참패하면서 통설이 깨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보수 성향이 강한 50∼60대와 영남권은 새누리당에 몰표를 주지 않았다. 야당 성향 2030세대는 이전과 달리 투표율이 높았다. 현재 여권 행태로는 내년 대선도 총선 재판이 될 듯하다. 당·청의 ‘우병우 지키기’에 질린 보수 집토끼가 떠나고 있다.

‘노무현 화두’는 더불어민주당으로 이동하고 있다. 친문 세력은 온라인 권리당원을 등에 업고 지도부를 접수했다. ‘이대문(이대로 가면 대권후보는 문재인)’ 시나리오가 회자된다. 친문당은 비주류에겐 ‘넘사벽’이 될 수 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김부겸 의원이 먼저 벽깨기에 나섰다. 대선후보 경선과 관련해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들어 뛰겠다”고 했다. 문재인 대세론을 견제하며 공정 경선환경 조성을 촉구한 것이다. 그의 도전이 신선하다.

허범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