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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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시행… 한국 사회는 '변화 중'

구내식당 북적·각자 계산… 식사문화 바꿨다 / 한식당마다 손님 없어 ‘텅텅’ / ‘시범케이스 걸릴라’ 조심 또 조심 / 관가·기업 대외접촉 극도 자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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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낮 12시, 3호선 경복궁역 부근에 위치한 한식당. 평소 맛집으로 소문난 곳이지만 2층은 텅 빈 모습이었다.

종업원 이모(55·여)씨는 “예전엔 사람들이 줄을 서 기다렸는데 오늘은 손님이 없어 2층은 아예 텅 빈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녁 예약 손님 역시 예전에 비해 60%밖에 안 된다”고 한숨지었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시행 첫날인 28일 서울 마포구의 한 식당에 ‘영란세트’를 알리는 안내문구가 붙어 있지만 손님이 없어 썰렁하다.
남제현 기자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의 한정식당에서 최모 대표가 김영란법 시행 이전의 장부와 이날(오른쪽 아래) 매상 장부를 보이고 있다.
인근의 다른 한식당도 마찬가지였다. 주인 김모(50·여)씨는 “오늘만 해도 예약이 줄줄이 취소되는 등 매출 타격이 크다”고 하소연했다. 이 식당은 원래 1인당 3만∼5만5000원으로 운영하는 메뉴를 2만9500원으로 낮췄다. 같은 시각 정부세종청사 구내식당. 한산한 청사 밖의 식당가와 달리 30여분 전부터 장사진을 이뤘다. 공무원 A씨는 “평소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확실히 늘었다”며 “외부 약속을 줄이고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시행 첫날인 28일 낮 광주시청 지하 구내식당이 직원들로 북적이고 있다.
광주=연합뉴스
김영란법 시행 첫날인 28일 서울 종로구청 구내식당에 법 시행을 알리는 홍보포스터가 붙어 있다.
남제현기자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시행에 들어간 첫날 우리 사회의 식사문화와 밤 풍경이 바뀌었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주변 식당에서도 의원과 기자들 오찬자리에서 각자 밥값을 계산하자는 광경이 목격됐다.

부정청탁금지법 시행 첫 날인 28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국민권익위원회 청탁금지법 위반행위 신고 접수 및 상담을 할 수 있는 정부 합동 부정부패, 공익침해 신고센터에 한 시민이 상담을 받고 있다.
남정탁 기자
28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외래병동에 안내문이 전광판에 표시되고 있다.
남정탁 기자
이날 오후 9시쯤 서울 강남구 역삼역 부근 고급 유흥주점 밀집 지역도 사정은 비슷했다. 평상시 고급 외제차로 붐비던 이곳도 눈에 띌 정도로 한산했다. 한 유흥주점 종업원 박모(32)씨는 “평일임을 감안해도 지금 시간이면 좌석 절반은 손님이 차는데 반도 안 되는 것 같다”며 “식당이야 가격 조정이라도 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것도 어려워 타격을 그대로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과 관련한 문의가 계속되는 등 혼란은 여전했다. 많은 지자체 공무원들은 이날까지 개별 사례에 대해 갑론을박을 벌였고, 일부는 각 부처 감사위원회나 국민권익위원회에 관련 내용을 문의했다. 특히 ‘일단 시범 케이스에 걸려선 안 된다’는 인식이 관가와 교육계, 기업 등을 중심으로 확산하면서 일부 행사가 취소되거나 대외 접촉을 극도로 자제하는 모습도 엿보였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도 29일 열리는 운동회에 음료수 및 음식물의 학교 반입을 일절 금지시켰다. 한편 김영란법 시행 이후 처음으로 이날 낮 12시4분쯤 “대학생이 교수에게 캔커피를 줬다”는 112 신고전화가 서울지방경찰청에 걸려왔지만 신고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사건이 접수되지 않았다. 권익위에도 이날 오후 6시 법위반 신고가 처음으로 접수됐다. 권익위는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법률상 신고자를 보호하도록 하고 있어 확인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김용출 기자, 편집국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