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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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일상 톡톡] '극장 데이트' 말고 할 게 있나요?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영화관람은 가장 대중적인 문화생활이자, 여가활동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매년 국민 5명 중 1명이 보는 ‘천만 영화’가 1~2편씩 쏟아지고, 1인당 연간 영화관람 횟수가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을 만큼 한국인들의 영화 사랑은 유별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올 여름 극장가도 '부산행'을 비롯 '인천상륙작전' '덕혜옹주' '터널' 등 이른바 'Big 4' 영화가 차례로 흥행을 이어나갔습니다. 유난히도 영화에 대한 높은 관심과 애정을 보이는 것은 많은 부분 한국사회의 척박한 여가 환경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여전히 절대적인 휴식시간과 충분한 여가활동이 부족한 현실 속에서 영화관람이 가장 '만만한 활동'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입니다. 남녀 간 데이트나 일상적인 만남, 가족들끼리 나들이 장소로 영화관은 여전히 매력적인 공간입니다. 물론 영화 콘텐츠 자체의 힘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최근 한국영화의 경향만 보더라도 단순 오락적인 재미에만 치중하는 것이 아닌 현실에서 제대로 다루지 않거나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을 조명하면서 사람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고, 치유를 돕는 영화들이 많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소비자들이 영화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취향과 기준으로 보고 있는지 살펴봤습니다.

여전히 이렇다 할 여가활동이 부족한 한국인들은 여유있는 시간에 대부분 영화관에 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명 중 9명은 영화는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문화생활이라 답했다.

시장조사전문기업 마크로밀 엠브레인의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만 19~59세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영화 관람과 관련한 전반적인 인식평가를 실시한 결과, 전체 10명 중 9명이 영화관람을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문화생활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렇다 할 여가활동이 여전히 충분하지 못한 한국사회에서 영화관람이 가장 대중적인 문화생활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결과이다.

또한 한국의 영화산업이 앞으로 더 좋아질 것 같다는 시각이 전체 77%에 이르러, 영화산업에 대한 전반적인 기대감과 긍정적인 태도도 엿볼 수 있었다. 한국의 영화산업이 더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는 여성과 중장년층에게서 더욱 뚜렷했다.

◆71.3% "남들이 재미있다고 하는 영화 한번쯤 본 적 있다"

영화 관람은 주변 사람들의 평가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71.3%가 남들이 재미있다고 하는 영화를 보는 경향이 있다고 응답한 것으로, 영화 흥행에 있어 입소문이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남들이 재미있다고 평가하는 영화를 보는 성향은 여성과 20대에게서 좀 더 두드러졌다.

다만 영화는 무조건 재미있어야 한다는 시각에는 동의하는 의견만큼이나 동의하지 못하는 의견도 많은 것으로 나타나 영화가 단순한 재미에만 그치지 않고, 그 이상의 무엇인가를 전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많다는 해석을 가능케 했다.

영화와 현실의 관계에 주목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먼저 전체 62.1%가 영화는 실제 현실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고 바라봤다. 영화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로, 특히 20대가 영화가 현실사회에 영향을 준다는 인식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10명 중 7명은 실제 현실을 반영한 영화를 좋아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다만 사회문제를 다룬 영화는 의도가 좋아도 보기 불편할 때가 있다는 의견이 상당한 수준으로, 현실 문제를 적나라하게 다루는 영화를 꺼려하는 심리도 엿볼 수 있었다.

◆영화 줄거리, 흥행 여부보다 더 중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화를 고르는 확고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전체 72.5%가 영화를 고르는 자신만의 기준이 있다고 응답한 것으로, 다른 연령에 비해 20대가 영화를 고르는 기준이 보다 분명한 모습이었다.

영화 선택 시 영향을 많이 받는 요인으로는 영화의 줄거리(57.8%·중복응답)와 장르(52.4%)를 꼽는 사람들이 단연 많았다. 성별에 상관없이 줄거리와 장르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영화의 흥행여부(35.4%)와 주변 사람들의 권유(32.7%)도 영화 선택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요인이었다. 특히 주변 사람들의 권유는 남성보다 여성에게 효과적이었다. 그 다음으로 △좋아하는 배우의 출연 여부(28.7%) △예고편 및 티져광고(25.2%) △영화평론가들의 평가(15.1%) △포털 검색어 순위(11.6%)를 고려한다는 응답이 뒤를 이었다. 다만 해외 유명 영화제의 수상여부(1.1%)는 영화 선택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대중들이 선호하는 영화 키워드 '재난'

대중들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 소재는 우주 등을 다룬 공상과학(36.2%·중복응답)과 재난과 자연 현상(34.6%)에 대한 이야기였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에 대한 선호도도 높았지만, 주로 일상에서 경험하기 힘든 이야기를 영화를 통해 보고 싶어하는 마음이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제를 풀 듯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이야기(33%)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았으며, 그밖에 △일상에서 흔히 일어나는 사건(27.2%) △사랑 이야기(25.9%) △역사적인 사실(20.9%) △사회 문제(18.3%) △가족애(18.2%) 등도 많이 선호하는 영화 소재들이었다.

남녀가 선호하는 영화 소재가 뚜렷하게 다른 점도 눈에 띄었다. 남성은 공상과학과 재난 및 자연현상, 역사적인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에 대한 호감이 큰 반면, 여성은 문제를 풀 듯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이야기와 사랑 이야기,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데이트 장소 vs 최적화된 감상 공간

주로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이유로는 대형스크린과 음향(69%·중복응답)을 단연 많이 꼽았다. 컴퓨터나 TV와는 비교하기 힘든 시각적, 청각적 효과가 영화관에서의 영화감상을 이끄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면 △집중이 잘 되고(27.8%) △입체감을 느낄 수 있으며(21.8%) △혼자서도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이라(11.7%) 영화관을 찾는다는 응답도 많았다.

이에 반해 여럿이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이고, 데이트를 하기에 적당하며, 주변 시설을 함께 이용할 수 있으면서 친구와 만나기 좋은 장소라 영화관에 가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었다.

전반적으로 영화관을 데이트 공간이나 만남의 장소로 인식하기보다는 영화감상에 최적화된 공간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뚜렷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로, 그만큼 영화관에서의 영화관람이 아주 일상적인 행동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해볼 수 있다.

주로 이용하는 영화관 브랜드는 △CGV(59.8%) △롯데시네마(26%) △메가박스(13%) 순이었다. 각 브랜드를 주로 이용하는 이유는 공통적으로 집이나 회사에서 가깝고, 교통이 편리해서인 것으로 나타났다. 영화관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각 브랜드 영화관 이용자 10명 중 3명만이 계속해서 해당 영화관을 이용할 것이라고 밝힌 반면, 더 좋은 영화관이 있으면 다른 곳을 이용할 의향이 있다는 의견이 절반 이상에 달했다.

◆"영화 상영 전 광고 좋아하는 편" 22.4%에 그쳐

한편 영화관에서 내보내는 광고에 대한 평가는 그리 호의적이지 못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전체 22.4%만이 영화 상영 전에 나오는 광고를 좋아하는 편이라고 응답한 것이다.

다만 남성보다는 여성, 그리고 젊은 층의 영화관 광고에 대한 호감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었다. 영화 상영 전에 하는 광고가 관심을 끌고(39.6%), 집중할 때가 많다(39.6%)는 시각도 10명 중 4명 정도에 그쳐,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광고라고 해서 특별히 더 효과적인 이목을 끌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역시 20대는 다른 연령에 비해 영화관 광고가 관심을 끌며(51.2%), 집중할 때가 많다(44.4%)는 의견을 비교적 많이 보였다. 영화 상영 전에 하는 광고가 재미있는 내용을 전달해 준다는 의견도 동의하지 않는 의견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다만 TV광고에 비해서는 다소 좋은 평가를 받는 모습이었다. 영화 상영 전 광고가 TV광고보다 더 집중이 잘된다는 의견이 이에 동의하지 않는 의견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TV광고보다 더 재미있다는 평가에는 동의와 비동의 의견이 비슷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