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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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현장] 사무실 운영도 빠듯…적자생존 내몰린 청년 변호사들

국내 변호사 2만명 시대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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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선변호인을 선정할 때 청년 변호사들에게 우선권을 주면 경제적 도움은 물론 실무경험 함양에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문모 변호사)

“현실적으로 국선변호인 지원을 제한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청년 변호사들이 국선변호에 더 많이 참여하길 희망합니다.”(법원행정처 관계자)

지난달 22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에서 법원행정처 주최로 열린 ‘청년 변호사와의 소통 간담회’에 참석한 법원 관계자와 변호사들이 청년 변호사 일자리 문제를 주제로 의견을 나누고 있다.
대법원 제공
지난달 22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법원행정처 주최로 열린 ‘청년 변호사와의 소통 간담회’ 참석자들이 청년 변호사 일자리 확대 방안을 놓고 솔직한 의견을 나눴다. 한 변호사는 “청년 변호사들은 내부 경쟁과 외부의 변호사 직역 잠식으로 이중고, 삼중고에 처해 있다”며 “법조 선배들이 함께 힘써준다면 지금의 불신과 실망이 ‘신뢰’와 ‘희망’으로 바뀔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개원으로 한 해에 2000명 넘는 신규 변호사가 배출되며 어느덧 국내 변호사 수가 2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사건 수임이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워지면서 청년 변호사들의 활로 타개를 위한 다양한 노력이 펼쳐지고 있다. 예전과 달리 변호사들도 집회 개최 등을 통해 거침없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청년 변호사 상대로 개인회생 교육

대법원은 10일 청년 변호사들이 개인회생 사건을 주로 담당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최근 검찰의 법조비리 수사 결과 개인회생 시장이 브로커들의 온상으로 전락한 실태가 낱낱이 드러났다. 대다수 변호사가 개인회생에 무관심한 틈을 타 브로커들이 변호사에게 명의만 빌려 가짜 법률사무소를 차린 뒤 개인회생 시장을 점령한 것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최근 청년 변호사가 대량으로 쏟아져 나와 고용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라며 “청년 변호사로 하여금 개인회생 사건을 맡도록 함으로써 사건 수임 문제와 브로커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대법원은 대한변호사협회와의 협업을 통해 청년 변호사들에게 개인회생 절차 전반에 관한 충실한 교육을 실시하고 청년 변호사들이 전자소송을 익숙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전자소송 교육 서비스도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법무부도 변협, 세계한인변호사회(IAKL) 등과 손잡고 청년 법조인의 활동 무대를 해외 법률시장에서 찾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한국 청년 변호사들을 위한 해외연수(Overseas Experience for Korean Young Lawyers)의 영문 이니셜을 따 ‘OK 프로젝트’로 명명한 이 사업은 외국 법무법인(로펌)이나 국내 로펌의 해외사무소 취업을 원하는 젊은 변호사들에게 적절한 교육을 실시한 뒤 성적이 우수한 이들한테 인턴 기회를 부여한다.

프로젝트를 시작한 2015년 1기 수료생 57명을 배출했고 올해 들어서도 변호사 69명이 2기 과정을 마쳤다. 2기 수료생 중 일정한 심사를 통과한 이들은 미국 뉴욕·워싱턴DC, 호주 브리즈번 등지에 있는 외국 로펌에 인턴으로 취업해 경험을 쌓게 된다.

법무부 관계자는 “국내 변호사의 급속한 증가로 경쟁이 심화하면서 국내 법률시장은 사실상 포화 상태”라며 “한국 기업의 해외진출 확대와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따른 외국 법률시장 개방으로 청년 법조인들의 해외 진출이 시급해졌다”고 말했다.

5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정문 앞에서 대한변호사협회 회원들이 지난 달 행정자치부가 입법예고 한 행정사의 업무 범위를 확대하는 행정사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행정사법 개정안 철회를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남정탁 기자
◆변리사·행정사 등 타 직역과 충돌도

지난 5일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청년 변호사가 주축이 된 변호사 50여명의 집회가 열렸다. 정부가 행정사들의 업무 영역을 대폭 확대하는 내용의 행정사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기 때문이다. 개정이 이뤄지면 행정사들은 그동안 각종 행정 서류의 작성·제출만 대행하던 것을 넘어 행정심판까지 대리할 수 있게 된다. 변호사들은 “행정심판에서 행정사가 변호사를 대신할 수 있게 되는 셈”이라며 “개정안은 변호사 직역을 침탈하려는 시도”라고 강력히 반발했다.

그동안 변리사들이 사실상 주도해 온 특허 분야도 변호사들의 도전이 거세다. 특허 관련 사건은 소송에 앞서 특허청 산하 특허심판원에 의한 특허심판을 먼저 거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변호사들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국민의 기본권 보장 차원에서 특허심판은 폐지가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최근 법원이 재판 전 단계의 특허심판을 없애는 방안을 검토하고 나서면서 변호사업계와 변리사단체 간에는 일촉즉발의 전운마저 감돌고 있다.

이처럼 변호사들이 다른 직역과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는 배경엔 역시 일자리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변협 관계자는 “올 상반기 서울지역 변호사의 1인당 월평균 수임 건수가 1.69건으로 떨어지고 평균 수임료도 300만∼400만원에 그쳐 사무실 운영조차 어렵다”며 “무엇보다 법률시장에 막 뛰어든 청년 변호사들의 생존권 보호가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고 말했다.

김태훈·정선형 기자 linea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