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세계와우리] 북·미 접촉 가볍게 볼 일 아니다

양국 최고의 전문가들 만남
비핵화·협상병행론 다시 고개
미 새정부 대안으로 삼을 수도
‘북핵포기’ 공조정책 강화해야
북·미 간의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의 비공식 대화로 한동안 가라앉아 있던 북·미 간의 비핵화와 협상 병행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한·미 당국자들은 이러한 북·미 간 접촉이 ‘정부와 무관’하거나 ‘특별한 게 아니라는 입장’과 ‘비핵화와 협상 병행론파’는 주류가 아니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비공식 대화에 참여한 인사들은 북·미 협상에서 최고의 전문가들로 눈길을 끈다. 로버트 갈루치 전 북핵특사는 1차 북핵 위기가 발생했던 1994년 북·미 간 제네바 협상 당시 미국 측 수석대표였고, 조지프 디트라니 전 6자회담 차석대표는 2005년 9·19 공동성명 채택 당시 대북협상 특사였다. 북한의 한성렬 외무성 부상과 장일훈 유엔 주재 차석대사 등은 전·현직 유엔 주재 차석대사 출신으로 북측의 대미 협상 창구로 알려졌다. 이에 미국 내 북·미 협상 회의론이 팽배해 있지만 뉴욕과 워싱턴의 언론과 싱크탱크에서 잊을 만하면 흘러나오는 비핵화와 협상 병행론을 간과할 상황은 아니다.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미국 조야에서는 지난 20여년간 대화를 통한 북한 비핵화 시도가 실패했다는 자성의 목소리와 함께 오바마 정부의 정책기조인 전략적 인내를 폐기하고 보다 강력한 압박으로 북한정권의 근본적인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따라서 미국 정부는 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의 기업과 기관을 제재하는 포괄적 세컨더리 보이콧이나 엄밀한 금융제재 등의 강력한 추가적인 대북제재를 통해 북한의 핵보유 기정사실화를 결코 용인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또한, 대북제재의 성패가 중국의 협조에 의해 좌우되는 상황이어서 중국을 직접 압박하거나 북·중 관계를 힘들게 만드는 간접적 압박도 제시되고 있다. 반면 군사적 옵션을 동반하는 제재는 검토 수준에 머물고 있는 듯하다. 그러므로 한국과 미국 정부는 북한과의 협상을 고려하기보다는 제재와 압박에 치중할 시점이라는 것이 공식적 입장이며, 이를 위한 한·미 공조가 철저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조윤영 중앙대 교수·국제정치학
그러나 미국의 정책적 변화가 감지되고 있는데 비핵화와 평화협정 병행추진론 등 미국이 직접 북한과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대화론자의 부상이다. 유엔 등의 제재일변도 및 군사적 수단의 사용이 비현실적이고, 이외의 적절한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협상의 시도는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입장이다. 이러한 변화의 시작은 올해 초 케리 미 국무장관이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워싱턴에서 회동한 후 비핵화와 평화협정에 관한 동시진행의 가능성을 발언한 이후부터이며, 얼마 전에는 미국의 유력 정책연구기관인 우드로 윌슨센터의 제인 하먼 소장이 핵 동결에 초점을 맞춰 북한과의 직접대화를 거론함으로써 무게감이 실리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미국 정보기관 최고수장인 제임스 클래퍼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핵 동결을 전제로 한 대북정책을 제시해 파문이 예상된다.

제재국면이 강력하게 시행되는 강대강 국면이 지속되면서 생겨나는 대북제재 협력에 대한 피로도의 누적과 미국의 부담감, 그리고 중국의 입장을 반영하는 제재와 대화 병행에 대한 필요성이 고려된다면 비핵화와 협상 병행론이 부각돼 추진될 수도 있다. 오바마 행정부가 이란과 쿠바와의 관계개선에서 얻은 자신감과 노하우로 북한에도 유사한 정책을 시도할 수 있고, 오바마 대통령 임기 내에는 불가능하더라도 민주당 정부가 다시 들어설 경우 시도할 수 있다. 문제는 북한이 실제적으로는 비핵화와 협상(평화협정) 병행론을 수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핵보유국 지위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평화협정을 얻기 위해 핵 국가의 지위를 포기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러한 북한의 입장을 인지하고도 미·중의 전략적 이익의 균형에 의한 병행론이 미국에서 대안으로 시도될 경우 한국은 이에 대응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수적이지만 무엇보다도 보다 공고한 한·미 간의 공조를 통해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북한을 몰고 가야 할 것이다.

조윤영 중앙대 교수·국제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