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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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직장생활' 안녕하십니까?

‘직장 내 괴롭힘’ 인건비 손실 연 5조 육박 / 15개 직종 3000명 실태 조사 / 46% “괴롭힘 경험하거나 목격” / 가해자 상류층 16%로 평균 5배 / 근로손실액 4조7835억원 추산 / 비정규직·하위층에서 더 심해 / 49% “고충처리 담당부서 없어”
지난해 서울의 한 중소기업에 입사한 A(26·여)씨는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상사 B, C씨와 사사건건 부딪쳤다. 이들은 A씨가 말대답을 하고 시킨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며 ‘성격이 이상하다’고 면박을 주고 A씨를 따돌리기 시작했다. 직원이 몇명 되지 않는 작은 회사에서 A씨를 빼고 회식을 하는 일 등이 이어지자 A씨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불면증에 시달리던 A씨는 결국 올해 초 직장을 그만줬다. A씨는 “업무보다도 인간관계 때문에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직장인 5명 중 1명이 직장에서 괴롭힘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괴롭힘으로 인한 인건비 손실은 연간 5조원 가까이 되는 것으로 집계됐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은 27일 이 같은 내용의 ‘국내 15개 산업분야의 직장 괴롭힘 실태’를 발표했다. 조사는 한국표준산업분류 21개 직종 중 종사자 수가 많은 15개 직종의 근로자 3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장에서 괴롭힘을 경험했거나 목격한 사람은 45.8%로 집계됐다. 직장 내 괴롭힘이 드문 일이 아닌 것이다. 22.7%는 피해를 입었다고 응답했으며 가해자는 3.5%, 목격자는 19.6%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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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롭힘 피해자는 계약 형태나 사회경제적 수준에 따라 차이를 보였다. 정규직 중 피해자는 21.3%로 평균보다 낮았지만 비정규직은 이보다 6.8%포인트 높은 28.1%로 조사됐다. 사회경제적 수준별로는 중하위층(25.5%)과 하위층(23.5%)의 피해 경험이 상류층(15.1%)이나 중상류층(20.2%)보다 많았다.
반면 가해자는 상류층이 16.2%로 평균보다 5배 가까이 높았다. 상대적으로 사회적 약자라 할 수 있는 비정규직과 하위층이 더 많은 괴롭힘 피해를 입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직장 괴롭힘으로 인한 인건비 손실은 연간 총 4조7835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인건비 손실은 직장 괴롭힘이 있는 집단과 없는 집단의 근로손실시간(근무시간 중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일을 하지 않는 시간 등) 차이를 계산한 것이다. 산업별로는 근로자 수가 많은 제조업의 손실액이 9647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도매 및 소매업 6560억원, 숙박 및 음식점업 5017억원 순이었다. 

이 같은 괴롭힘에도 피해자들은 별다른 외부 도움을 받지 못하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 괴롭힘에 대응하는 방식으로는 ‘가해자에게 직접 맞대응한다’는 응답이 36%로 가장 많았고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 사실 이야기’ 27%, ‘혼자 참거나 체념’ 20% 순이었다. 회사 내 상담부서에 호소하거나 외부 기관·노동조합에 상담한다는 응답은 각각 10%도 채 되지 않았다. 회사에 직장 괴롭힘에 대응하기 위한 고충처리담당 부서 및 담당자가 없다고 응답한 비율은 48.7%, 있는지 모르겠다는 응답은 30.5%였다. 회사 차원의 대응책이 운영이 잘 되지 않고 있거나 있어도 형식적으로만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개발원은 “직장괴롭힘은 국가적으로 수조원의 인건비 손실을 유발하는 사회적 문제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며 “괴롭힘 피해자와 목격자들이 피해 사실을 호소할 수 있는 기구 및 조직을 실효성 있게 운영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유나 기자 yo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