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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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북한의 생명줄, 석탄

영국 상류층에 영어를 보급한 왕이 있다. 1307년까지 30년 넘게 집권한 에드워드 1세다. 다리가 길어 ‘긴 다리’로 통한 이 왕은 프랑스에서 교육을 받았는데도 선왕들과 달리 영어에 능했다. 왕이 쓰니 귀족과 종복도 덩달아 쓸밖에. ‘영어 제국의 탄생’은 그의 공인지도 모른다. 그는 1295년 모범의회를 비롯, 자주 의회를 소집해 영국 정치 체제의 필수 요소로 의회제도를 발전시키기도 했다. 전쟁 비용을 조달하려는 것이었으니 불순한 의도였는지는 몰라도.

에드워드 1세가 의회 반대에 못지않게 끔찍이 싫어한 것이 있다. 석탄을 때는 냄새다. 1302년 의회 개회 기간 중 석탄 사용을 금했고, 1306년엔 전국에 금령을 내렸다. 위반자를 고문과 처형으로 다스렸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석탄은 예나 지금이나 그리 환영받지 못하는 화석연료다. 중세와 근대 초기에는 더 그랬다. 왜?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공감의 시대’에서 간명히 약술했다. “캐기도, 나르기도, 저장하기도 어렵다. 다루기에도 지저분하고 태우면 주변이 엉망이 됐다.”

그럼에도 석탄은 영국에선 18세기에 1차 에너지원이 됐고 19세기 중반 이후로는 유럽의 나머지 지역도 휩쓸었다. ‘산업혁명은 석탄에서 나왔다’는 말도 있다. 왜? 삼림이 고갈됐기 때문이다. 나무가 귀해진 것이다. 영국 숲에 가장 큰 타격을 입힌 것은 영국 해군이다. 군함 건조에 엄청난 목재가 투입됐다. 물론 해군만은 아니다. 유리 공장 하나를 가동하는데도 숲 하나가 거덜났다니까. 석탄은 오늘날에도 유용하지만 애물단지에 가깝기도 하다. 온실가스 논란 때문이다.

그 석탄이 북한에선 생명줄 노릇을 하는 모양이다. 국제적 대북무역 제재 속에서도 중국 수출량이 지난 8월 247만t에 달해 월간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3분기 북·중 교역액도 약 15억5000만 달러로 전년도 동기보다 늘었다. 석탄이 2억8000만 달러로 1위다. 대북제재 제방을 무너뜨리는 고약한 구멍이다.

중국 구멍을 어찌 막아야 하나. 고심을 거듭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우리 정부에 그럴 정신이 있는지 의문이다. 비선실세의 국정농단 의혹에 혼비백산이 됐기 때문이다. ‘긴 다리’ 에드워드 1세도 혀를 찰 일이다.

이승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