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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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톡톡] “해외결제 수수료 카드사 부담”… 말로 지시

금감원·카드사 ‘꼼수’ 행정지도 논란
금융감독원이 때아닌 ‘꼼수’ 행정지도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논란의 발단은 이렇습니다. 지금까지 해외수수료를 받지 않던 은련카드(유니온페이)가 12월1일부로 결제수수료 0.8%를 받기로 한 것입니다. 약관상 해외결제망 카드에 의해 수수료가 인상되면 국내 카드사들은 적어도 한 달 전에 고객에게 알리고, 소비자들이 부담해야 합니다. 카드사들도 이를 위해 금감원에 수수료를 인상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했습니다.

이때부터 금감원의 행보가 석연치 않습니다. 금감원은 구두로 0.8% 해외결제 수수료를 카드사가 직접 부담하라고 했다고 합니다. 금융 소비자 부담을 덜어준다는 금융당국의 입장은 이해하지만, 약관상 해외수수료는 고객이 부담해야 합니다. 카드업계는 또 비자·마스터카드 등 다른 해외결제망을 보유한 카드사들이 이번 일을 잘못된 선례로 활용할까 두려워합니다. 2015년 기준 국내 해외결제 시장 점유율 1위(55.5%)인 비자카드가 당장 내년부터 수수료를 1.0%에서 1.1%로 인상하겠다고 통보한 마당입니다. 카드사들이 유니온페이에 이어 비자카드 수수료 인상분도 자신이 떠안게 되지 않을까 우려합니다.

금융계에서 금감원의 이 같은 행정지도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리 곱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입장을 공문이 아닌 구두로 전달한 부분입니다. 구두는 기록이 남지 않고 문제가 될 경우, 발을 빼기 용이합니다. 카드사의 약관에 어긋난 지시를 내렸다면 이런 정황이 더욱 짙어집니다. 과거 금융당국은 구두지시 혹은 창구지도를 관치금융의 수단으로 활용했습니다. 책임질 일 없이 권한만 휘둘렀던 것이죠. 금감원은 올해부터 새롭게 제정한 ‘금융규제 운영규정’을 통해 카드사를 포함한 금융회사를 행정 지도할 때 구두를 통한 지도를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불필요한 규제가 양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금감원은 스스로 정한 규정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염유섭 경제부 기자
이와 관련해 금감원은 카드사가 해외수수료 부담을 떠맡도록 구두지침을 내린 적이 없다고 합니다. 다만 일부 카드사들이 10월 말 찾아와 유니온페이 인상분만큼 고객에게 부담되는 수수료를 올리겠다고 밝혔고, 이것이 어떤 성격의 수수료인지 금감원 내부적으로 검토해봐야 한다고 구두로 전달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해당 수수료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현재 진행 중이라고 해명합니다. 그러나 금융권에서는 여전히 금감원의 구두지시 논란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소비자 부담을 덜어주려는 금융당국의 노력은 칭찬할 만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입장을 담아 정식으로 공문을 전달해야 하지 않았을까요. 그렇다면 꼼수 행정 논란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금감원의 처신이 아쉬운 이유입니다.

염유섭 경제부 기자  yuseob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