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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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Talk톡] 도 넘은 애널리스트 간섭…실효성 있는 대책 시급

부당압력 다반사
최근 ‘증권가의 꽃’이라 불리는 애널리스트들이 객관적으로 기업들을 분석하지 않는다는 비난이 거셉니다. 한진해운 등 악재가 이어지는 부실기업에 대해서도 목표주가를 띄우며 매수의견을 내놓은 보고서가 쏟아졌다는 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추진 과정에서 국내 증권사 22곳 중 무려 21곳이 합병에 찬성을 한 것 등이 비판에 불씨를 댕긴 것입니다.

하지만 증권업계는 애널리스트에 손가락질하기에 앞서 이들이 상장사의 부당압력에 시달리지 않고 소신있게 의견을 펼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애널리스트들이 투자의견을 매수에서 중립으로만 내려도 기업탐방 자체를 거부하는 ‘억지’ 상장사들이 많은 게 현실입니다. 심지어 리포트가 나오는 즉시 구체적 문단의 특정문구까지 지목해가며 원하는 대로 바꾸고 그림 교체까지 요구하는 기업들의 노골적 횡포도 적지 않습니다. 법적인 보호장치조차 없어 기업에 요구받은 대로 보고서를 수정할 수밖에 없고, 따르지 않을 경우 소속된 증권사로부터 회사를 떠나도록 종용받는 경우도 많습니다.

김라윤 경제부 기자
지난해 면세점 업체 선정을 앞두고 있는 H사에 대해서 낮은 점수를 매겼다 한바탕 곤욕을 치른 애널리스트 B씨의 경우가 대표적 예입니다. B씨는 H사 부사장으로부터 “당신의 기업분석보고서 때문에 영업에 중대한 지장을 주었으니 보고서를 당장 삭제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를 인용한 신문사들에 일일이 연락해 기사를 내리게 하라, 사과문까지 써서 올려라”는 부당한 요구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소속 증권사도 H사가 원하는 대로 할 것을 B씨에게 종용했습니다. B씨는 결국 회사까지 옮겨야 했습니다.

상장사들의 ‘갑질’이 잇따라 불거지면서 지난 8월 금융감독원 주도로 ‘IR·조사분석 업무처리 강령’이 제정되긴 했습니다. 하지만 법적인 효력이 없어 실효성은 의문입니다. 강령이 제정된 후 관련 회의도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애널리스트들이 있었는데도 피해 사례가 정식 접수돼 처리된 적도 없었습니다. 애널리스트 C씨는 “분기마다 한 번씩만 회의가 열리는 것 자체가 비효율적”이라며 “보다 실효성 있는 장치를 마련하고 자체적인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김라윤 경제부 기자 ry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