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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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기획] "땅값 떨어진다" 편견… 갈 곳 없는 장애학생들

장애인 특수학교 입학 '별 따기'… 장거리 통학전쟁 '한숨만' / 지역 주민 ‘기피시설’ 편견에 설립 난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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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구에 사는 윤모(45·여)씨는 매일 아침 아들과 한바탕 전쟁을 치른다. 발달장애가 있는 아들이 1시간 정도 걸리는 구로구의 서울정진학교에 도착하려면 오전 6시30분쯤 일어나 씻고, 아침을 먹고 옷을 입은 뒤 늦지 않게 통학버스를 타야만 한다. 윤씨는 피곤하다며 짜증을 내거나 울음을 터뜨리는 아들을 달래면서 속이 까맣게 타들어간다고 털어놨다. 윤씨는 집 근처에 정신지체 특수학교인 교남학교가 있지만, 정원이 너무 적어 입학경쟁이 치열해 아들을 보낼 엄두를 못냈다. 윤씨는 “아들이 수업시간에 자주 졸고, 하굣길 버스에서도 자다가 녹초가 돼서 내린다”며 “가까운 곳에 특수학교가 더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애학생들이 다니는 특수학교가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지만 지역사회의 반발이나 부지 문제 등 갖가지 이유로 설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장애학생들은 특수학교에 다니고 싶어도 다니지 못하거나, 긴 통학시간을 감내해야 한다.

◆특수학교 입학은 ‘하늘의 별 따기’

23일 교육부에 따르면 특수교육 대상자, 즉 장애학생은 2006년 6만2538명에서 지난해 8만7950명으로 10년 사이 2만5412명(40.6%)이 늘었다. 같은 기간 전국의 특수학교는 143개교에서 170개교로 18.9% 늘었고, 정원은 2000여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일반적으로 장애학생 학부모들은 초등학교까지는 일반학교에서 비장애학생들과 함께 교육을 받는 통합교육을 선호한다. 이후 중·고교에 진학할 때는 장애 유형이나 정도에 맞춘 특수학교에 보내고 싶어한다. 그러나 특수학교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해 복합장애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입학이 어렵다.

지난해 기준 전체 특수교육 대상자의 29.5%만이 특수학교 또는 특수교육지원센터에 다니고 있다. 나머지 70.5%는 특수학교에 가고 싶어도 ‘울며 겨자 먹기’로 일반학교 특수학급 등에서 교육을 받아야 한다. 발달장애 1급 아들을 둔 노모(47·여)씨는 “아들이 중학교에 올라갈 때 특수학교에 지원했는데 떨어졌다”며 “도대체 장애 등급이 어느 정도여야 특수학교에 들어갈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자폐증이나 인지기능장애 등 발달장애를 가진 학생들은 겉으로만 봐서는 장애 여부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아 대부분 일반학교로 보내진다.

◆지역사회 반발에… 국회의원까지 가세


특수학교 부족현상이 가장 심각한 곳은 서울이다. 서울에는 각종 의료시설이 밀집해 많은 장애학생들이 살고 있다. 그러나 2002년 종로구의 경운학교 개교 이래 15년째 특수학교가 들어서지 못하고 있다. 서울 25개 자치구 중 양천구와 금천구, 영등포구, 용산구, 성동구, 동대문구, 중랑구, 중구 등 8곳에는 특수학교가 단 1개교도 없다.

지난해 서울시교육청은 강서구와 서초구에 특수학교 설립을 추진한다는 행정예고를 하고, 교육부 중앙투자심사위원회에서 설립 예산안까지 통과됐지만 지역사회의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특히 강서구의 서진학교는 2013년에도 같은 단계에서 설립이 무산돼 설립을 간절히 바라는 장애학생 학부모들이 마음을 졸이고 있다.

앞서 강서을 지역구의 김성태 국회의원(바른정당)은 서진학교 설립 예정 부지인 공진초등교 폐교 부지에 ‘국립한방의료원’을 유치하겠다고 공약했다. 지역주민들은 강서구에 이미 교남학교가 있고, 장애인 시설이 많다는 점 등을 들어 공진초등교 부지에 특수학교보다는 국립한방의료원이 꼭 들어서야 한다며 거들고 있다.

전혜영 특수학교설립반대비상대책위원장은 “인접한 양천구나 영등포구에는 특수학교가 없는데 강서구에 또 하나를 세우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며 “허준 생가가 있고 메디컬특구로 지정되는 등 강서구의 지역 특성에 비추어볼 때 한방의료원을 유치하는 게 더 낫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은자 함께가는서울장애인부모회 부대표는 “애초 김 의원이 한방의료원 유치를 공약할 때 공진초등교 부지를 소유하고 있는 교육청에 묻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약속한 것”이라며 “강서구에 사는 장애학생 중 먼 거리를 통학하는 학생들이 많은데 수요가 있으면 학교를 하나 더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박했다.

서진학교와 마찬가지로 2013년 설립이 무산된 중랑구의 동진학교는 아직까지 대상 부지를 찾지 못해 설립 계획조차 세우지 못하고 있다. 서초구에 설립 예정인 나래학교는 도서관·공연장 등 주민편의시설을 함께 만드는 조건으로 지역주민의 동의를 얻어냈다.

◆전국 곳곳서 특수학교 설립 난항


특수학교 설립을 둘러싼 갈등은 비단 서울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전국 시·도교육청이 교육부에 제출한 특수학교 설립 추진 계획을 보면 22개 지역 중 서울 강서구와 중랑구를 포함한 9곳에서 특수학교 설립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경기도교육청은 애초 용인 수지구에 특수학교 설립을 추진했다가 지역주민들의 반대에 가로막혀 대상 부지를 처인구로 옮겼다. 경기 의왕특수학교 개교도 같은 이유로 본래 계획보다 1년 미뤄졌다. 인천시교육청이 2019년 개교를 목표로 설립 추진 중인 서희학교는 대상 부지인 검단택지개발지구의 일부가 검단스마트시티사업에 포함되면서 추진 일정이 불투명해졌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특수학교 등 장애인시설이 생기면 땅값이 떨어진다는 일종의 근거 없는 편견으로 지역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며 “장애인들도 같은 시민으로서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주영 기자 buen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