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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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플러스] 올스타전 '비선실세' 세리머니, 왜 웃지 못할까

“저는 정치에 아무 관심도 없고 비선실세니 그런 것도 관심 없는 그냥 배구선수다. 웃자고 한 일을 죽자고 죽일 듯이 몰아넣지 말아달라.”

여자 프로배구의 김희진(25·IBK기업은행)이 23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 중 일부다. 김희진은 22일 프로배구 올스타전에서 ‘비선실세’ 최순실씨를 패러디한 세리머니를 선보여 박사모(박근혜 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 등 친박 단체의 거센 항의를 받고 있다. 물론 “누구에게나 표현의 자유는 있다”며 김희진을 지지하는 여론도 만만찮다. 그러나 김희진은 자신을 둘러싼 논란에 심적 부담을 느낀 듯 SNS를 통해 적극 해명에 나서고 있다.

김희진에 따르면 애초 논란이 불거진 세리머니는 그의 의사와는 관계가 없었다. 그는 “주최 측에서 몇 가지 패러디를 지목해줘서 선수들이 한 것”이라며 “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고 자진해서 그런 코스프레를 할 사람도 아니니 그런 걸로 엮이기 싫다”고 했다. 그러나 이같은 호소에도 뿔난 친박 단체는 김희진에 애꿎은 화살을 돌리고 있다. 올스타전 직후 소속팀 IBK기업은행 배구단의 공식 홈페이지에는 김희진을 겨냥한 비난성 글이 도배됐고, 결국 배구단은 홈페이지 팬게시판 운영을 중단했다.

스포츠 경기 도중 정치나 종교적 의사를 표현하는 일은 세계적으로도 항상 논란을 불렀다. 일례로 지난해 8월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남자 마라톤에 출전한 에티오피아의 페이사 릴레사는 결승선을 통과하며 손으로 X자를 그리는 세리머니를 했다. 에티오피아 정부의 폭력적인 시위 진압에 대한 저항의 표시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치적 세리머니가 명확한 목표의식을 갖고 있는 것과 달리 김희진의 ‘비선실세’ 세리머니는 축제의 일부였을 뿐이다. 실제로 현장의 관중들은 김희진의 세리머니를 “웃자고” 즐겼다.

한 박사모 회원은 카페에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니지만 이젠 무식한 것도 죄”라며 격노하기도 했다. 이 말을 빌려 배구팬들의 심정을 대변해보자. “축제를 즐기지 못하는 것은 죄가 아니지만 죽자고 달려드는 것은 민폐 아닌가.”

안병수 기자 ra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