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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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빨간 안희정’, 보수를 끌어안다

고교 때부터 퇴학 반복한 운동권 출신 고집 정치인 / 자유총연맹 등 보수단체, 거부감 갖지 않아
대북송금특검 수사로 옥고를 치른 뒤 갓 출소한 ‘김대중(DJ)의 비서’ 박지원이 2007년 워싱턴을 찾았다. DJ의 방미 일정을 조율하기 위한 게 목적이었는데, 대북송금특검법을 수용했던 노무현 대통령을 거칠게 비난했다. 독설이 우박 떨어지듯 쏟아졌다.

그런 그가 안희정에 대해서는 입에 침을 튀기면서 칭찬했다. 서울구치소에 먼저 들어갔던 박지원이 안희정이 입소하자 비아냥댔다. “야, 나는 DJ정부를 탄생시킨뒤 장관, 비서실장을 하고 소통령이라는 말까지 들었는데 너는 뭐냐. 빙×같이.” 

한용걸 논설위원
돌아온 답이 의외였다. “정권을 만들었으면 누군가 책임져야지요. 책임질 일을 책임지고 반성하겠습니다.” 박지원은 이후 안희정을 다시 봤다고 말했다.

노무현은 장기욱 의원에게 돈을 빌려주었다가 장수촌이라는 샘물회사를 빚 대신 받았다. 말이 회사이지 영업망조차 없었고 논바닥에서 물을 뽑아내는 형편이었다. 허접한 회사를 돈 대신 받자 권양숙 여사가 “돈이 썩어나느냐”며 핀잔했다고 한다. 아무도 손대지 않으려 했던 것을 안희정은 돈을 빌려가면서 직원 월급을 주고 회사를 꾸려나갔다. 그러다가 정치후원금과 뒤섞였다.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된 뒤 검찰이 정치자금법 위반 수사에 착수했다. 당시에는 원외 대통령경선 예비후보자(노무현은 원외)는 후원회를 만들 수 없었고 선거자금을 받으면 불법이었다. 노 후보 캠프에서 일했던 한 인사는 “희정이가 손에 피묻히지 말라며 혼자 뒤집어쓰려 했다”고 말했다. 법정에 선 안희정은 재판관에게 “저를 무겁게 벌해 주셔서 승리자도 법과 정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이고 법과 정의의 새로운 대한민국을 감당하게 해 달라”고 했다. 그는 자기를 마지막으로 정치자금 관련 비극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총대를 멨다고 한다. 노 대통령은 “안희정에게 많은 빚을 졌다”면서 종이로 얼굴을 가린 채 울먹였다. 이후 정치자금법이 개정됐다.

안희정은 고교 때 학내 시위를 주도하다가 제적됐다. 검정고시를 치른 뒤 고려대에 입학했으나 학생운동을 하다가 구속됐다. 당시 고려대 5인위원회라고 하는 반미 시위배후조직이 있었는데 그 수장이 안희정이었다. 안팎이 빨갛던 그에 대해 보수층이 다시 보고 있다.

극우로 분류되는 자유총연맹이 그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2013년 5월 연맹의 전국위 등반대회가 충청도 용봉산에서 개최됐는데, 행사 3시간 내내 폭우가 쏟아졌다. 일회용 비닐비옷을 껴입은 안희정 지사는 추위에 떨면서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당시 그를 눈여겨보았던 연맹 간부들이 요즘 입을 열고 있다. 안 지사는 최근 박근혜정부의 초대 농식품부장관이었던 이동필씨를 2017금산세계인삼엑스포 조직위원장으로 영입했다. 젊을 때 충청도에서 평화봉사단 활동을 했던 캐슬린 스티븐슨 전 주한 미대사는 안 지사를 고향친구라고 부른다. 반미 올가미에서 그를 풀어준 것이다. 일부 종교단체도 그에 대해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사드, 대연정, 대통령 선의…. 그의 발언 때문에 측근들은 “집토끼를 놓치고 있다”고 걱정한다.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안 지사가 옹고집이 있다고 전한다. 좋게 말하면 소신이고 나쁘게 표현하면 독선이다. 응어리가 없을 수 없는 그가 “지도자의 분노란 그 단어만으로도 피바람을 부른다”며 경계했다. 격정을 누르고 두 팔을 벌리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3%를 밑돌던 안 지사의 지지율은 20%대로 치솟고 있다. 선거조직 없이 순전히 개인기로 끌어올린 지지율이다. 지사 7년간 행적을 모르면 ‘바람’으로 평가절하할 수 있다. 민주당의 선거인단 신청 폭주가 안희정 현상이 반영된 게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 온갖 자문단을 출범하며 부나방을 끌어모으는 문재인 전 대표가 수개월째 30%대에서 답보하는 것과는 대조적인 현상이다. 일각에서 논의되는 ‘크리스탈(철수·희정 끝이름 조합 영어)프로젝트’가 가동되면 대세론을 거론했던 누구의 입이 무색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용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