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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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청춘에 희망을!] 등록금·생활비… ‘지옥 알바’ 시달리는 N포세대

‘청년 빈곤’ 서글픈 자화상
#1. “대학에 입학하고 학교 근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요. 어릴 때부터 해보고 싶었던 일이라 참 기뻤는데 두 달도 못하고 그만뒀어요. 매운 음식을 시켜 놓고 왜 맵냐고 따지는 손님, 판매용 메뉴를 리필해달라는 진상 손님들 때문에 정말 힘들었어요. 그런 손님보다 더 참을 수 없었던 건 ‘너희는 노예가 되었다는 심정으로 손님을 대해야 한다’고 세뇌시키던 매니저였어요.” 23살 대학생 박모씨의 고백이다.

#2. 2017년의 최저시급은 6470원이다. 2014년에는 5210원있고 해마다 300∼400원 정도씩 올랐다. 한 끼 식사하기에도 빠듯한 이 돈을 벌기 위해 ‘알바 청춘’은 1시간을 꼬박 일한다.

“알바노동자들은 ‘최저시급이 곧 최고시급’이라고 해요. 업무의 강도나 형태에 따라 더 많은 시급을 줘야 하는데 업주들은 최저시급만 보장해주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보니 대부분이 최저시급을 적용하죠.” 알바노조 이가현(25) 위원장의 설명이다.

학교에 다니기 위해서, 최소한의 생활을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하는 2017년 대한민국 청년들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인격 모독, 쥐꼬리만도 못한 임금, 성희롱 등을 참아내야 한다.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정작 중요한 공부나 취업준비는 뒷전이기 일쑤다. ‘알바 지옥’에 시달리는 청년들이 부지기수다. 


◆아르바이트 때문에 뒷전으로 밀린 학업, 취업준비

29일 청년 유니온이 지난달 발표한 ‘구직자 실태조사 결과와 청년취업지원정책의 방향’에 따르면 29세 이하 대학생 및 취업준비생 483명 중 지난 1년간 아르바이트를 한 이들은 71.7%(345명)에 달했다. 평균 7개월, 주 22시간을 일했고, 65만원의 월급을 받았다. 교육비와 취업 기간 중의 생활비를 벌기 위한 것이었다.

공부와 취업 준비를 위한 아르바이트라는 의미인데 주객이 전도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대학생 민모(24)씨는 “보충 강의가 아르바이트 시간과 겹쳐 사장에게 사정을 했더니 ‘그럴 거면 그만두라’고 하더라. 강의 대신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고 말했다. 조사 응답자의 62%는 아르바이트 때문에 취업준비에 전념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아르바이트가 구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응답자(54%)도 절반을 넘었다. 지난달 발표된 잡코리아의 조사 결과도 비슷한 상황을 전한다. 응답자 1614명 중 72.7%가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 취업을 염두에 두고 일자리를 찾는다’고 응답했지만, 95.2%가 ‘취업에 도움되는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꺾기’를 아십니까… 만연한 임금체불

아르바이트생을 많이 고용하는 업체는 소위 ‘꺾기’라는 게 있다. 신촌의 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이모(25)씨의 경험이다.

“하루에 6시간을 일하기로 했는데, 손님이 없으면 3시간만 일을 시키고 강제로 조퇴시키는 꺾기를 당한 적이 많다. 소규모 자영업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다.”

임금을 30분 단위로 책정해 30분 미만의 시급은 주지 않는 것도 꺾기의 한 형태다. 예를 들어 5분 지각하면 그로부터 25분 동안 일하는 것은 임금에서 받을 수 없다. 손님이 몰려 25분을 더 일해도 사장이 퇴근시키면 5분이 모자라 임금을 못 받는다.

알바노조 시위 모습. 근로계약서 미작성, 최저임금, 휴식시간 없음, 연장 야간 근무를 지적하고 있다.
자료사진
꺾기는 아르바이트생들을 근로의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수많은 사례들 중 하나다.

근로계약서 미작성과 임금체불은 입이 아플 정도로 지적된 문제다. 알바노조가 2015년 펴낸 상담사례집에 따르면 사례 416건 중 149건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 급여나 근무시간, 수당 등을 명시한 근로계약서가 없으면 고용주의 횡포에 제대로 대응하기가 힘들다. 근로기준법상 근로계약서 작성은 필수다. 알바노조의 한 조합원은 “근로계약서 작성을 요구하면 채용하지 않는 업주들이 대부분이다. 당장 한 푼이 급한 청년들로선 쉽게 요구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한 푼이라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년들에게 임금체불만 한 고통은 없다. 알바노조 상담사례에서 76.4%(318건)를 차지할 정도 만연한 것이기도 하다. 임금체불에는 최저시급을 지키지 않은 것은 물론 주휴수당(1주 동안 규정된 근무일수를 다 채운 근로자에게 유급 휴일을 주는 것) 등도 포함된다. 부당해고, 휴게시간 준수 위반, 퇴직금 미지급, 욕설·인격모독·성희롱 등은 아르바이트생들이 겪는 이중고, 삼중고를 보여주는 것이다. 



◆적극적인 대응, 당연한 권리 찾기의 첫걸음

아르바이트생들이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부당함에 적극적으로 맞서고 연대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가현 위원장은 “노동법이나 근로기준법에 대한 교육을 받은 알바노조 조합원들도 막상 알바 현장에 가면 근로계약서 작성이나 주휴 수당 보장 등을 주장할 수 없다고 토로한다”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모든 이들이 부당한 처우를 당하면 적극적으로 신고하고, 해결해 줄 수 있는 단체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고려대 강수돌 교수(경영학)는 “공부에 매진해도 부족한데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정작 수업 시간에 조는 학생들을 볼 수 있다”며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도 학업에 매진할 수 있도록 사회적 환경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또 “5개년, 10개년 계획을 세워 무상 교육을 점점 확대해 대학도 (무상 교육이) 가능하도록 바꿔야 한다. 물론 그 전에 국민들의 가치관 변화와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