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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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취재] 영업도 좋지만… 카페서 19금 음악 버젓이

길거리 외설적 노래 민폐 논란/부모들 “아이들 귀 틀어막고 싶었어요”/성행위·살인 등 내용 담은 노래/미성년자 청취불가 지정 불구/공공장소에서 여과 없이 틀어
여가부·지자체 단속 ‘나몰라라’
16일 경기 안양 한 번화가의 카페에서 힙합가수 A의 노래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주변의 다른 소음이 만만찮았지만 볼륨이 높아 멀리서도 가사의 내용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노래의 선율 부분이 지나고 랩이 시작되자 카페 인근에서 쉬고 있던 시민들 사이에 난감한 표정이 번졌다. 가사가 지나치게 선정적이었기 때문이다. ‘19세 미만 청취불가’ 판정을 받은 이 노래는 헤어진 남녀가 서로를 잊지 못하고 성관계를 가지는 모습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열살 난 아들과 거리를 걷던 홍모(40·여)씨는 “아들의 귀를 막아주고 싶다. 카페에서 영업을 하기 위해 음악을 틀어놓은 거지만 공공장소에서 이래도 되는지 싶다”며 눈살을 찌푸렸다.

서울 관악구의 한 화장품 매장에서는 인기가수 B의 노래를 틀어 놓고 있었다. 역시 ‘19금 음악’이다. 비속어가 여러 번 나오는 이 노래를 매장 앞을 지나는 10대 청소년들은 익숙한 듯 따라불렀다. 한눈에도 10대 손님이 많은 성북구의 다른 카페에는 애인의 내연남을 살해한다는 내용이 담긴 C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현행 청소년 보호법상 미성년자 청취불가로 판정된 유해 매체물은 청소년에 대한 판매, 배포, 이용이 금지된다. 어기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하지만 19금 음악을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길거리나 공공장소에서 트는 경우 사실상 이 같은 규정은 무용지물이다. 관계 당국은 단속에 손을 놓고 있는 형편이고 업주들은 문제될 게 없다는 식이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관련법이 시행된 이후 총 1만36개곡이 청소년 유해음악으로 지정돼 있다. 이 중 2015년 한 해 청소년 유해음악으로 선정된 884곡 중 유해성을 판단한 이유(중복 가능)는 비속어 사용이 825곡으로 가장 많고 담배·술 언급이 167곡이다. 성관계를 묘사한 노래도 103곡에 이른다.

이런 노래를 담은 음반은 청소년유해매체물임을 알리는 표시를 해야 하고 청소년들이 구입할 수 없다. 또 방송사는 오후 10시 이전에 해당 곡을 방송할 수 없고 음원사이트에서는 성인인증을 해야 들을 수 있다. 19금 음악에 어린이, 청소년들이 접근하는 걸 막는 나름의 장치를 둔 것인데 정작 공공장소에서 이 같은 노래를 듣는 것에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

여가부 관계자는 “인력 문제 등으로 관리 감독이 어렵고 길거리에는 불특정다수가 다니다 보니 청소년보호법 적용범위를 정하기 힘들다”며 “지방자치단체에서 협력해야 (이같은 문제를) 개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지자체 관계자는 “외설적인 정도가 지나치지 않다면 신고도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며 “선정적인 포스터나 간판의 경우 사진 등 물증이 남아 단속을 할 수 있는데 음악의 경우 형체가 없어 단속이 사실상 불가능한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노래를 활용하거나 길거리에서 듣는 업주들이나 청소년들에게서 문제의식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카페 업주 장모(40)씨는 “음원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노래들을 무작위로 틀어놓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음악이 미성년자 청취불가인지는 나 자신도 모른다”고 털어놨다. 이모(18)군은 “신경쓰지 않는다. 유튜브 등을 통해 얼마든지 들을 수 있는 노래들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김범수 기자 swa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