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밀착취재]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평화의 소녀상’ 열풍

“일본군 위안부 문제 저라도 잊지 않을래요”/ 기림비 건립에 작은 정성 전달/ 넥타이·배지 등 후원 제품 불티/ 전국 곳곳 ‘소녀상’ 세우기 운동/“정부 소극적 대처 답답함 반영”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이모(39)씨는 최근 지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본 ‘작은 소녀상’을 구매했다. 가로13.7㎝ 세로12.2㎝로 아담한 사이즈였지만 TV에서만 봤던 생김새 그대로였다. 소녀상을 가게 한 켠에 둔 이씨는 “수익금 일부가 위안부 피해자에게 전달되는 등 좋은 취지로 만들어졌고 손님들 반응도 나쁘지 않다”며 “위안부 문제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해서 구입했다”고 말했다.

대학생 신모(25)씨는 얼마 전 고등학생들이 주도하는 평화의 소녀상 건립 캠페인에 후원금을 보냈다. 촛불집회를 계기로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신씨는 “소녀상이 여러 곳에 세워지는 건 ‘잊지 말자’는 우리끼리의 다짐같다”고 했다. 신씨가 사는 서울 성동구 왕십리광장에는 10일 ‘성동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진다. 성동구 학부모들의 제안으로 올 2월부터 4000만원가량을 모금해 123㎝ 높이의 소녀상이 제작됐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잊지 말자는 취지로 민간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평화의 소녀상’들이 전국에 확산하고 있다. 취지에 공감한 지방자치단체나 일부 학교 등에서 소녀상, 기림비 등을 추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소녀상 피규어, 팔찌, 뱃지 등을 구매하는 이른바 ‘착한 소비’로 위안부 문제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최근 강경화 외교부장관 후보자와 관련해 한일 위안부 합의 문제가 다시금 불거지면서 이같은 모습이 더욱 확산할 전망이다. 작은 소녀상을 판매하고 있는 한 업체 관계자는 “하루 편균 10개 내외가 팔리지만, 위안부 문제가 화제가 되고 뉴스에 나오면 10배 이상으로 팔리기도 한다”며 “지난달 올해 최고 판매량을 기록하는 등 추이를 봤을 때 국민들의 관심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윤병세·기시다 공동회견 윤병세 외교부 장관(오른쪽)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한일 외교장관 회담을 마친 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양국 합의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소녀상 열풍은 박근혜정부의 한일 위한부 합의가 결정적 계기로 분석된다. 당시 ‘최종적’, ‘불가역적’이란 표현과 함께 일본이 군의 관여와 정부 책임을 인정하고 위안부를 지원하는 한국 재단에 10억엔(약 100억원)을 출연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으면서 “일본과의 경색된 관계를 풀기 위한 해법으로 위안부 카드를 내놓았던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

9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현재까지 국내에 세워진 소녀상 등 ‘평화비’는 33개인 것으로 나타났다. 2007년 하동평사리 공원을 처음으로 현재까지 세워진 68개의 평화비 중 절반가량이 2015년 12월28일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 세워진 것이다.

 

이와 함께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도 두드러졌다. 지난해 이화여고 역사동아리 ‘주먹도끼’ 학생들이 시작한 ‘작은 소녀상 세우기 운동’은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화제다. 좌우 30㎝, 높이 40㎝ 크기의 소녀상 100개를 세우는 것이 목표인데 현재까지 전국 72개교에 소녀상을 세웠다. 학생들은 SNS 등을 통해 자발적으로 60여만원의 설립비를 모금하고 학교, 친구들을 설득했다.

성환철 이화여고 역사교사는 “위안부 문제를 계속해 환기하고 문제의식을 공유하자는 취지”라며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캠페인을 만들어 가서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친구들과 캠페인에 동참한 이인서(17)양은 “모금활동 등을 하면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됐다”고 했다.

온라인 스토리 펀딩을 통해 지난해부터 ‘레고 평화상’ 등 위안부 후원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는 김영우(33)씨는 “30대인 나만해도 지난해 뉴스를 보기 전까지 이 문제의 심각성을 전혀 알지 못했다”며 “젊은 층들에게 많이 알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다양한 상품들을 제작했다”고 말했다. 김씨가 진행한 ‘소녀해방단’ 펀딩은 올초 2100만원의 목표액을 돌파하는 등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정의기억재단 오성희 사무처장은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 이후 오히려 일반 시민의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며 “평화비는 기본적으로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반복되지 않아야한다는 의미, 올바른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의미가 커 이런 민간영역에서의 평화비 확산은 대단히 긍정적인 모습”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만 정부차원이 아니라 소극적인 정부의 모습에 답답해하는 시민들이 늘어나면서 나타난 현상인 것은 안타까운 부분이다”라고 덧붙였다.

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
사진=대한민국 고등학생 소녀상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