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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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현장] '前정부 색깔 지우기식' 교육정책 되풀이

정치논리에 휘둘린 고교 입시 / ‘일반고 살리기’ 심도있는 성찰 뒷전 / 대입 특화된 ‘귀족학교’ 옥죄기 지적 / “집단사고의 함정… 사회적 합의 필요”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평가가 열린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경복고등학교에서 한 학생이 시험 도중 머리를 싸매고 있다. 연합뉴스
“자율형사립고가 건학이념에 따라 다양하고 특성화한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학생선발 방식을 개선하겠습니다.” “외국어고나 국제고의 이과반, 의대준비반 같은 부당한 교육과정을 적발하면 지정취소까지 불사하겠습니다.”

최근 현안처럼 느껴지지만 시계는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근혜정부는 집권 첫해인 2013년 8월 자사고·외고·국제고가 신흥 명문고로 부상한 데는 선발효과에 크게 기대고 있다며 ‘일반고 교육 역량 강화 방안’을 내놨다. 하지만 당시 교육계 반응은 싸늘했다. 이명박정부의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 정책을 희석시키기 위한 의례적인 정치 행위로 받아들였다. 결국 박근혜정부는 교육의 자율성·특수성을 침해하지 말라는 학부모들의 집단반발에 떠밀려 현행 고입 선발 방식을 유지했다.
문재인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외고·자사고 일괄 폐지 공약도 ‘전 정부 색깔 지우기’ 일환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 정부가 일반고를 어떻게 살릴 것인지를 성찰하기보다는 이른바 대입에 특화한 예비고로 규정한 ‘귀족학교’ 옥죄기에만 골몰한다는 이유에서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교육학)는 교육 정책만큼은 우보만리(牛步萬里·우직한 소처럼 천천히 걸어서 만리를 간다) 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박정희정권이 1974년 시작한 고교평준화 정책의 보완 차원에서 제5·6공화국이 특수목적고를 만들고, 김대중정부가 고교 다양화·수월성 교육 차원에서 씨를 뿌리고 노무현·이명박정부가 바통을 이어받은 자사고 역사를 잊어선 안 된다는 차원이다. 박 교수는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끼리 모여 아이디어를 내면 집단사고 함정에 빠질 수밖에 없다”며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사안이라면 차라리 정책 결정을 다음 정부로 넘기라”고 당부했다.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