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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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SNS 장악 보고서' 파문] “2040 투표 독려 못하게”… 탈법 거침없이 제안

작성 배경·의도
‘평소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평범하게 활동하다가 선거철이 되면 국민을 분열시켜라. 20∼40대가 선거 때 투표 독려를 못하게 막아야 한다.’

국가정보원이 2012년 18대 대통령 선거와 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SNS 장악’ 보고서를 통해 청와대(이명박 대통령)에 은밀하게 보고한 내용은 이렇게 요약된다. 국정원은 보고서에서 각종 탈법과 비윤리적 방법을 거침없이 제안했다.

◆“평소엔 주민 관심사로 소통하라”

국정원은 페이스북 활동과 관련해 “우선 내년 총선에 대비, 입지자들의 ‘출신 학교·지역 커뮤니티’ 등에 대한 활동강화 지침을 하달, 튼튼한 뿌리 조직 착근에 주력하라”고 했다. 국정원은 다만 페이스북을 평시엔 평범한 곳으로 꾸며놔야 한다고 지적했다. “평소에는 의도성이 노출되는 정치 이슈보다는 지역현안 등 주민 관심사 위주로 소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페이스북 내 건전단체 모임 결성과 함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과 같은 국가적 관심 현안 발생 시마다 심도 있는 정보 및 토론의 장을 제공, 여론을 선도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트위터 활동과 관련해서도 비슷한 색깔의 제안을 했다. 국정원은 “‘통영의 딸 구하기’와 같은 국민적 공감대 확보와 보수진영 철학 전파에 유리한 의제를 적극 발굴·이슈화해 트위터 공간의 여론 건전화를 선도해야 한다”고 했다.

또 “현장성에 바탕을 둔 동영상 중계매체(좌파의 ‘아프리카’에 해당)를 구축, 트위터러들이 습관적으로 찾을 수 있는 보수진영 내 인기 근거지를 마련해야 한다”고도 했다.

국정원은 ‘트위터 파고들기’의 기술적 조언도 빠뜨리지 않았다. 국정원은 “팔로어 확보를 통한 범여권의 트위터 내 여론 영향력·점유율 확대에 주력해야 한다”면서 “총선이 5개월밖에 남지 않은 만큼 단기간 내 인위적 팔로어 늘리기(인터넷상 회자 중인 ‘팔로어 늘리는 비법’ 등 활용 시 충분히 가능) 방안을 추진하라”고 했다.

“트윗 수가 많더라도 이를 들어주고 재전파하는 팔로어가 없으면 ‘공허한 혼잣말’에 불과”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 국정원은 18대 대선을 앞두고 트윗과 리트윗을 위해 트윗덱, 트윗피드 등의 프로그램을 이용, 정치적 글을 SNS에 퍼뜨린 혐의를 받고 있다. 국정원 직원 이메일에서는 ‘트윗덱 활용 요령’ ‘팔로어 늘리는 방법’ 같은 문서가 발견되기도 했다.

국정원은 특히 보고서에서 “팔로어 숫자가 많은 유명인 초청 정기대화·논쟁 등을 통해 네티즌 관심을 유도, 여권 인사들의 팔로어 확대 및 인지도 제고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면서 유명 인사들이 국민 갈등을 부채질할 것을 제안했다.

당시 온라인에서는 김제동·공지영·김미화 등 이른바 ‘폴리테이너’를 중심으로 해고 노동자 고공농성, 4대강 사업 등 주요 이슈에 대해 활발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를 두고 국정원은 “야당과 좌티즌들이 주요 선거마다 불만 자극과 사실 왜곡에 앞장서며 대정부·여당 이미지 흐리기 도구로 악용하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20∼40대 투표 독려 막아야”

국정원이 이처럼 SNS를 적대시한 이유는 무엇일까. 국정원은 야당 성향의 청장년층(20∼40대)이 SNS를 통해 총선·대선에서 투표독려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경계심을 노골화했다. “선거 막판 20∼40대 부동층의 야권 쏠림현상(밴드왜건 효과)을 촉진, ‘20∼40대(친야) vs 50∼60대(친여)’가 세대대결 고착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면서 “특히 내년 총선·대선 시 여야 간 치열한 박빙 승부 전개 가능성이 농후한 가운데, 한층 진화된 SNS 투표독려 캠페인이 투표 당일 변수를 넘어 선거 상수로 자리매길할 소지가 커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정원은 앞서 치러진 10·26 서울시장 선거에서 한나라당의 참패 원인 역시 ‘뉴미디어 활용에 의지가 없는’ 정부와 한나라당에서 비롯됐다고 봤다. 보고서는 “트위터 이용자가 100만명(6·2 지방선거)→ 250만명(4·27 재보선)→ 430만명(10·26 재보선)으로 급증했다”며 “SNS가 선거 쟁점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는 후보 선택 판단 창구로서 역할이 강화되고 있으나 여당의 절대 불리 여건이 지속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결국 2012년 4·11총선과 18대 대선을 앞둔 보수정권의 두려움이 여실히 드러난 ‘진단서’이자 구체적인 공격 방법이 담긴 ‘공략집’인 셈이다.

특별취재팀=조현일·박현준·김민순 기자 hjunpar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