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왼쪽)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가 2012년 12월 4일 중앙선관위 주최 TV토론회가 열린 서울 여의도 MBC 스튜디오에서 만나 토론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자료사진 |
국가정보원이 2011년 11월 작성해 청와대에 보고한 ‘SNS의 선거 영향력 진단 및 고려사항’ 보고서. |
국정원은 보고서의 머리말을 통해 “여권이 야당·좌파에 압도적으로 점령당한 SNS 여론 주도권 확보 작업에 매진, 내년 총·대선 시 허위정보 유통·선동에 의한 민심 왜곡 차단 필요”라고 밝혔다. 선거 관여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국정원이 이 문건을 작성, 보고한 행위는 국정원법 3조를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국정원이 여당 선거전략을 고민한 행위는 이 조항이 규정한 국정원의 직무 범위에 해당될 여지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국정원의 핵심기능인 ‘정보 수집’은 국내의 경우 대공, 대정부전복, 방첩, 대테러, 국제범죄조직에 한정된다. 이 외에 △국가기밀에 대한 보안 △형법·군형법·군사기밀보호법·국가보안법에 규정된 죄에 대한 수사 △정보 및 보안 업무의 기획·조정이 국정원 직무의 전부이다. 이 때문에 국정원은 어떤 경우이건 선거 관련 분석, 대책 등을 수립할 이유와 근거가 없다.
‘정치활동에 관여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한 국정원법 9조에도 어긋난다. 구체적으로 ‘특정 정당이나 특정인의 선거운동을 하거나 선거 관련 대책회의에 관여하는 행위’ 조항(2항4호)을 저촉한 정황이 짙다. 국정원 보고서는 정부·여당의 SNS 대응전략을 세세히 담고 있는데 이명박정부 청와대나 한나라당이 어떤 식으로든 관련 회의, 정책 수립 등에 활용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의심이다.
국정원은 양대 선거를 대비한 ‘필승전략’을 총 5쪽의 보고서를 통해 상세히 밝혔다. 이는 ‘공무원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할 수 없다’는 공직선거법 9조와 85조를 위반한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선거운동의 기획에 참여하거나 실시에 관여하는 행위’ 조항(86조 1항2호)을 위반한 정황도 짙다.
국정원은 아예 “내년 총선·대선 시 여야 간 치열한 진영승부 전개 가능성이 농후하다”며 “한층 진화된 SNS 투표 독려 캠페인이 투표 당일 변수를 넘어 선거 상수로 자리매김할 소지가 커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국정원의 탈선이 명백히 드러난 구절로, 이에 대해선 해명·변명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정부·여당의 SNS 대응 실태’ 편에선 ‘공무원의 의지·이해 부족’을, 한나라당의 경우 ‘민주당에 비해 한 박자 뒤진다’는 점을 각각 질타했다. 단기와 중·장기로 나눈 대책 편은 3쪽에 걸쳐 각종 불법과 탈법적 시행 방안을 노골적으로 제시해 그 자체로 법 위반을 뒷받침하고 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
국정원의 정치·대선 개입 시도는 이미 2013년 ‘국정원 댓글 사건’ 검찰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민낯이 드러난 바 있다. 2015년 대법원은 국정원법·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원 전 국정원장에 대해 징역 및 자격정지 3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이 항소심 핵심 증거였던 ‘시큐리티 파일’과 ‘425 지논 파일’의 증거력을 문제 삼아 선거법 위반의 유무죄 여부에 대한 판단을 보류한 만큼 파기환송심의 판단이 주목된다. 대법이 증거력을 부정한 두 파일은 국정원 직원 김모씨의 이메일 계정에 첨부됐던 텍스트 파일로 원 전 원장의 지시사항과 김씨 자신의 트위터 활동 내역, 리트윗 대상인 보수 성향 논객의 트위터 계정 및 트위터 팔로어 늘리는 방법이 포함돼 있다.
특별취재팀=조현일·박현준·김민순 기자 soon@sege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