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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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새 정부 ‘탈권위주의’·‘파격’ 이미지 무색

지난 18일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 주관으로 열린 ‘15개 기업 초청 정책간담회’가 훈훈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습니다. 이용섭 일자리위 부위원장은 “일자리 많이 만드는 사람이 애국자”라고 기업을 치켜세웠고, 참석 기업인들은 “하반기 채용을 늘리겠다”고 화답했습니다.

그러나 이날 간담회를 전후로 재계에서는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습니다. 당장 하반기 채용 규모를 늘려야 하는 것도 부담이지만, 간담회 직전 기업들이 참석자를 부랴부랴 바꾸는 등 한바탕 소란이 일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 이용섭 부위원장이 18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의 회관에서 열린 `일자리 15개 기업`의 대표들과 정책간담회에서 삼성 권오현 부회장 등 참석자들과 손을 맞잡고 있다.

당초 일자리위에서 별다른 지침이 없어 기업들은 채용을 관할하는 경영지원본부장 등 임원급을 참석 명단에 올렸지만, 일자리위 측에서 “부위원장과 급이 맞지 않는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는 것입니다.

화들짝 놀란 기업들은 참석자의 ‘급’을 높여 다시 명단을 제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 권오현 부회장과 KT 황창규 회장은 아예 ‘필참’을 요구받았다는 말도 나옵니다.

이번 간담회에는 초대 기업의 면면이 적잖이 바뀌었습니다. 그동안 정부의 기업인 초청 간담회에서는 자산 총액 순위가 초청 기준이었는데, 이번에는 근로자 수가 많은 개별 기업 순으로 선정했습니다. 그래서 정책간담회 단골손님이던 SK·LG·롯데·한화 등의 지주사가 빠지고 이들 기업의 주력 계열사가 참여하게 됐습니다. 형님 대신 아우들을 초대한 셈이죠. 일자리 창출을 중심으로 경제정책을 운용하겠다는 정부 의지를 드러낸 것이어서 신선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참석자 조정 해프닝을 보면 정부 출범 내내 따라붙던 ‘탈권위주의’, ‘파격’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김수미 산업부 기자.

재벌개혁을 외치며 새 정부가 출범한 후 재계는 낮은 포복 중입니다. 지난 5월 한국경영자총협회 김영배 부회장이 경총포럼에서 새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 관련 비판적 발언을 하고 청와대와 여권으로부터 ‘3단 경고’를 받은 후로는 아예 입을 닫는 분위기입니다.

조만간 대통령과 대기업 총수의 회동이 이뤄질 것으로 관측됩니다. 총수들 가슴에 이름표를 붙이지 않거나 줄을 세우지 않는 것만이 ‘탈권위’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청와대발 탈권위 바람이 정부와 기업의 낡은 수직관계에도 변화를 일으키길 기대해 봅니다.

김수미 산업부 기자  leol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