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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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1대4의 치킨게임' 점입가경… 꿈쩍않는 카타르

‘카타르 단교사태’ 장기화 조짐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1대4의 치킨게임’이 점입가경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이집트 등 아랍권 4개국이 카타르와 단교한 지 두 달이 넘었지만 사태는 악화일로다. 카타르 단교를 둘러싼 아랍의 첨예하고도 복잡한 분쟁은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장기화할 조짐이다. 4개국은 꾸준히 카타르에 대해 단교조치를 해제하고 싶으면 요구사항을 수용하라고 압박하지만 카타르는 콧방귀만 뀐다. 4개국은 카타르가 이란의 극단주의 단체 등 테러 세력을 지원한다고 비난하며 지난 6월5일 외교·경제 관계를 단절했다. 물적·인적 교류를 제한했으며 카타르 선박과 항공기의 자국 영해, 영공 통과를 금지했고 육상 국경도 막았다.

4개국은 단교 철회 조건으로 △이란과 제한적 상업 거래 이외의 교류 금지와 주이란 공관 폐쇄 △터키와 군사 협력 중단 △국영 알자지라 방송 폐쇄 △테러 용의자 정보 제공 등 13가지를 카타르에 제시했다. 하지만 카타르는 요구사항들이 하나같이 부당하다며 즉각 거부 의사를 밝혔고, 단교 사태의 원인으로 꼽히는 이란과 터키가 카타르를 지지한다고 선언하면서 중동의 긴장관계는 꼬여만 가고 있다.
◆4개국의 압박은 이어지고 있다

사우디, UAE, 바레인, 이집트 등 4개국은 카타르에 13개 요구를 수용하라고 최근 재차 압박했다. 4개국 외무장관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바레인에 모여 단교 사태 해결 방안을 논의했다. 단교 선언 이후 이들이 모두 모인 것은 지난달 5일 이후 두 번째다.

회의를 주재한 셰이크 칼리드 알칼리파 바레인 외무장관은 “테러리즘과 극단주의에 대한 자금지원을 중단하라는 우리 요구를 진정으로 수용해야 카타르와 대화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카타르는 다른 나라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고 증오의 여론을 퍼뜨리지 않는다는 내용의 13개 요구에 응답해 중동과 세계 안정에 기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델 알주바이르 사우디 외무장관도 “카타르가 요구안을 이행한다면 기꺼이 대화하겠다”면서 “카타르는 이를 신중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13개 요구는 협상 대상이 아니며 이를 축소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오직 파괴와 부패, 죽음과 이어지는 이란과 협력해서 이득을 얻는 나라는 한 곳도 없다”면서 “카타르가 이란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면 큰 오판”이라고 지적했다.
◆카타르는 위축되지 않고 있다


중동의 ‘대국’ 사우디가 국경을 봉쇄하면서 압박하는데도 카타르는 움츠러들기는커녕 ‘피해자’임을 부각하면서 우호적인 국제 여론을 조성하고 있다. 조용했던 소국 카타르가 오히려 ‘네임 밸류’가 높아지는 부수 효과도 얻고 있다. 카타르는 이번 위기를 사우디의 ‘그늘’에서 벗어날 기회로 보고 있다.

카타르는 미국과 서방의 유력 언론을 접촉하면서 ‘주권 침해 피해 사실’을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셰이크 모하마드 알타니 카타르 외무장관은 미국 CNN과 인터뷰에서 “단교의 진짜 원인은 카타르의 독립성과 그에 따른 정책”이라면서 “큰 나라들은 자신의 역할이 영향받는 것을 못마땅해한다”면서 사우디를 겨냥했다.

‘다윗과 골리앗’의 구도를 그리면서 국제사회에서 동정과 지지를 얻으려는 카타르는 주변 정세도 불리하지 않다. 사우디와 UAE가 국경과 영공·영해를 봉쇄했지만 다른 대국인 이란과 터키가 카타르를 지지하고 걸프협력회의(GCC) 회원국 쿠웨이트와 오만이 단교에 동참하지 않았다. 국제 여론도 카타르에 나쁘지는 않은 분위기다. 특히 유럽에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와 밀착한 사우디 왕가를 경계하는 흐름도 읽힌다.

카타르는 “우리는 너무 부자여서 위협을 걱정하지 않는다”면서 전 세계 수출량의 30%를 차지하는 액화천연가스(LNG) 판매 등을 통해 충분한 국부를 축적한 만큼 봉쇄 위협은 전혀 문제가 안 된다는 여유도 보이고 있다. 2017년 국제통화기금(IMF) 통계에 따르면 국민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카타르가 6만4447달러로 사우디(2만1848달러), UAE(4만162달러), 바레인(2만5495달러), 이집트(3460달러 추정)보다 훨씬 높다.

◆제3국들이 중재하려 노력 중이다

중국과 미국은 카타르 단교사태 해결에 적극 나섰다. 중국은 분쟁 당사국인 UAE와 카타르 외무장관을 초청해 메시지를 전하는 등 중재 역할을 본격화하고 있다.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7월19일 술탄 알자베르 UAE 외무장관을 만난 데 이어 20일에는 셰이크 모하마드 알타니 카타르 외무장관과 만나 단교 사태와 관련해 GCC에서 이견을 해결하라고 주문했다. 이는 수니파와 시아파의 맹주인 사우디와 이란 간 갈등과 대립을 바탕으로 전개되고 있는 4개국의 카타르 단교 사태를 GCC 틀 안에서 해결해야지 외세(유럽과 미국)의 도움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GCC는 페르시아만 6개 아랍 산유국이 협력 강화를 위해 설립한 기구. 카타르, 사우디, UAE, 바레인이 속해 있으며 쿠웨이트와 오만도 회원국이다. 현재 쿠웨이트가 적극적인 중재 역할을 하고 있다.

이에 앞서 미국도 갈등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었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7월10일 카타르를 방문했다. 멀리서 쿠웨이트의 중재를 지원하는 수준에 머물려 했지만,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미국의 국익이 직접 침해되는 상황까지 오자 직접 개입에 나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우방들의 이해가 엇갈린 이번 사태에 대해 ‘난처한’ 반응을 보이면서 직접 중재를 자제해왔지만, 테러리즘 소탕 작전이 카타르 사태로 지장을 받게 되면서 더는 방관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카타르에는 미군의 대(對) ‘이슬람국가’(IS) 공습 거점이자 중동에서 가장 큰 미군 기지인 알우데이드 공군기지가 있고, 바레인에는 이란을 감시하는 역할을 맡은 미 해군 제5함대가 주둔하고 있다.

◆역사적 배경은 복잡하다

사우디를 중심으로 한 주류 수니 아랍계 진영은 중동 내 정치·군사 대국인 이란과 터키의 영향력 확대를 경계하고 있다. 단교를 주도한 수니파 종주국이자 ‘큰형님’ 격인 사우디는 같은 걸프 수니파 형제국인 카타르를 희생시켜서라도 더 늦기 전에 이란과 터키의 확장을 막아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번 사태는 분쟁과 반목, 화해와 갈등을 반복했던 사우디와 이란, 터키 3국이 벌이는 주도권 경쟁의 연장선인 셈이다.

사우디와 이란은 여러 곳에서 충돌하고 있다. 두 나라는 각각 이슬람 수니파(세계 전체 이슬람 신자 16억명 중 90%)와 시아파(10%)의 중심국으로 종파적으로 대립하는 데다 혈통도 아랍계와 아리안계로 다르다. 정권은 물론 일반 대중도 서로에 대한 반감이 높은데 이는 종파 간 갈등이라기보다는 혈통의 이질성과 정복과 피지배의 역사적 배경 탓이 크다. 사우디는 또 미국의 전통적 우방이지만, 이란은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국제사회에서 반미 진영을 대표해 왔다.

사우디가 카타르와 단교한 것은 이란이 주도하는 ‘초승달 벨트’ 위험에 맞서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많다. 카타르는 수니파 국가지만 LNG 매장지를 이란과 공유하고 있어 두 나라는 경제적 협력 관계를 맺어왔다. 사우디가 이란을 누르고 중동 패권을 잡기 위한 차원에서 카타르를 압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사우디와 이란의 패권 다툼이 이번 카타르 봉쇄의 형태로 불거져나왔다는 분석이다.

이상혁 선임기자 next@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