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경제 talk톡] 환골탈태 약속 과기정통부 좋은 선례 남기길

‘보고서는 키워드만, 회의는 토론으로’

매주 월요일에 열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간부회의 풍경이 달라졌습니다. 그동안 각 실국에서 올리는 간부회의 보고서만 총 30장 가까이 됐지만, 유영민 장관 취임 후 단 1장으로 줄었습니다. 23개 실국의 보고내용을 A4용지 한 장에 담아야 하니 부서당 한 줄을 넘지 못합니다.

유 장관은 지난 7월 취임하면서 “일하는 방식을 바꾸겠다. 페이퍼는 한 장으로 줄이고 보고문화, 회의문화도 다 바꾸겠다”고 공언했습니다. 

김수미 산업부 기자
4차산업혁명의 선단에서 글로벌 기술 동향을 살피고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를 발굴해야 하는 과기정통부 직원들이 보고서에 파묻혀 있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줘야 좀 더 생산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기정통부 직원들의 일은 줄었을까요? A국장은 “한 장 빼꼭히 쓰던 보고서를 한 줄로 응축해 보고해야 하니 더 많이 고민하게 된다”며 “회의도 자유토론식으로 진행하다 보니 사안에 대해 더 깊이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비생산적인 보고 방식에서 벗어나 좀더 깊이 있는 시각을 갖게 됐다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일을 획기적으로 줄여주겠다는 당초 취지에 부합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유 장관 취임 후 일하는 방식을 바꾸기 위한 ‘사이다’ TF와 예산집행을 꼼꼼히 살펴보는 ‘어떻게 할래’ TF, 소프트웨어 진흥정책의 체질 개선을 위한 ‘아직도 왜’ TF 등 과기정통부 내에서 운영하는 각종 TF만 7개입니다.

신임 장관의 시도만큼이나 TF 이름도 신선하지만, 이름조차 다 외우기 힘든 TF에 피로감을 느낀다는 뒷말도 나옵니다.

관료조직에서 민간기업 출신의 수장을 영입할 때는 ‘변화와 혁신’이 절실하거나 혹은 그런 이미지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민간기업의 DNA를 관료조직에 옮겨심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박근혜정부가 공직사회를 개혁하겠다며 2014년 11월 초대 인사혁신처장으로 발탁한 삼성 인사전문가 출신 이근면 전 처장은 취임 후 공무원연금개혁과 연공서열식 평가 등 관료집단의 관행을 깨뜨리는 데 주력했습니다. 그러나 민간기업식 경쟁과 성과중심 개혁은 공직사회의 반발에 부딪쳤고, 실험과 개혁들은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창조경제’의 안갯속에 헤매던 과기정통부(전 미래창조과학부)는 새 이름, 새 수장을 맞이하며 환골탈태를 약속했습니다. 이번만큼은 성공한 민간기업 출신 장관이라는 선례를 남겼으면 좋겠습니다.

김수미 산업부 기자 leolo@segye.com